일요일의 오후를 느긋하게 보내면서 예전, 특히 1990년대를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및 대학생으로서 살았던 1990년대의 그 시절은 역시 책가방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겠지요. 게다가 당시에 책가방에 대한 무의미했던 탁상공론도 있었다 보니 그것도 같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흔한 학생용 책가방을 이용하기보다는 스포츠백을 이용했습니다.
특히 선호하는 것이 반원형으로 아래가 평평한 테니스 가방. 시중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서 용량이 크고, 특히 바닥이 넓고 평평해서 교과서, 문제집, 도시락 및 체육복을 가방 안에서 잘 엎어지지 않도록 기능적으로 수납가능한 물건이어서 특히 좋았습니다. 게다가 나중에는 테니스를 했다 보니 여러모로 유용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불량학생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나 봅니다. 교내에서는 물론이고 신문, 방송 등의 언론에서도.
스포츠백이 학생답지 않다고 어쩌고저쩌고.
당시 어린 제 귀에도 이상하게 들려 그런 담론에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뭔 미친 소리야!!"
배낭형의 흔한 학생용 책가방은 도시락을 넣었을 때 엎어지는 경우도 있는데다 보통 당시의 학생용의 백팩이 그렇게 정교한 물건은 못 되었던 터라 낭패를 겪은 적도 있었고 적재능력의 문제로 다른 가방을 여러개 들고 다녀야 하는 문제도 있었는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고 명확한 개념정의도 없이 학생답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은 또 뭔지.
스포츠백을 들고 다닌다고 학교에서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고 속칭 "빠따" 로 약칭되는 체벌이 가해지기도 하는 등 한때는 스포츠백 사냥도 있었습니다만, 학생 및 학부모의 반대의 목소리가 커져서 결국은 좌절되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인 사건 중의 하나.
중학교 3학년 때에 학교내에 가방끈 자르기 사건이 횡행했는데, 스포츠백을 상대로 한 경우는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묘하게 미수로 그쳐버렸습니다. 제 가방도 그 피해를 입었는데 손잡이 한쪽이 반쯤 잘린 것으로 끝났습니다. 당시에 불량학생들이 스포츠백을 애용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추론해 보면 범인이 신원을 특정당하는 일을 피하려고 무차별테러를 가장하되 진짜 다 잘라 버리면 스포츠백의 소지자에게 맞을 것은 겁나서 그렇게 대략 타협을 본 것 같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는 스포츠백이 교내에서 학생용 가방의 주류를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스포츠백을 나쁘게 보는 풍조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