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판타지 1의 GBA판에는, 각 스토리 보스를 쓰러트리면 하나씩 열리는 이른바 "소울 오브 카오스" 던전이라는 게 존재하죠.
보스들은 다른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보스들이 나오고, 가장 쉬운 "대지의 은혜의 사당"에 나오는 보스들조차도 즉사기를 아무렇지 않게 날려대기 때문에 첫 보스를 잡은 시점에서는 상대하기 힘들죠.
심지어 몹들도 은근히 강한 편이고 좋은 아이템들도 잘 나오기 때문에 이 던전들에 적응되면 스토리진행이 너무 편해질 정도로 캐릭터가 강해져있고, 최종보스마저도 간단히 썰려버리죠.
소울 오브 카오스 던전은 총 네가지가 존재하는데, 다음 네가지에요. 각각 특이한 플로어가 존재하죠.
마법 상점 플로어에요.
온갖 마법사 NPC들이 돌아다니면서, 본편에서 나온 Lv8까지의 마법 및 마법무기, 마법 아이템들을 판매하는 플로어.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Lv8 마법을 판매하는 NPC와, 마법내성 아이템인 커튼류를 파는 NPC.
사실 둘 다 스토리 내에서도 만날 수 있긴 한데, 마을에서 은근히 깊숙히 들어가야 나오는지라 첫 플레이때는 전혀 몰랐었죠.
특히 Lv8 마법을 파는 NPC가 문제인데... 딱 봐도 마을 출구로 보이는 곳이 사실은 출구가 아닌지라, 그쪽으로 그냥 쭉 걸어가면 동떨어진 위치에 마법가게가 있더라고요. 공략 보고서야 알았어요.
암튼 그렇게 해서 저는 저 플로어에서 Lv8 마법 (특히 부활마법인 아레이즈)을 처음 구매했기 때문에, 저 플로어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네요.
몬스터가 전혀 나오지 않기에 은근 평화로운 건 덤.
로봇 마을 플로어.
여기저기에 반파된 로봇이 가득하고, 그나마 반파되지 않은 로봇은 둘 뿐에 한 로봇은 망가진 상태라 반파된 로봇에서 잔해를 찾아서 갖다줘야하죠.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맘에 드는 플로어였어요.
드워프들의 마을 플로어입니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일본쪽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해요. 지푸라기가 필요한 사람에게 답례로 물건을 받고, 그걸 다른 사람과 교환해서 결국에는 엄청 귀중한 걸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 플로어가 딱 그런 구조에요.
한 드워프의 문제점을 해결해주면 아이템을 받고, 그걸 다른 드워프에게 줘서 그 드워프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면 다른 아이템을 받고, 그걸 또 다른 드워프에게... 이걸 반복해서 "스타루비"를 얻고, 그것으로 골목을 막고 있는 골렘을 비켜나게 하는 구조에요.
로봇 마을 플로어도 그렇고, 몬스터 배틀 외의 퍼즐적인 요소를 도입해서 다른 재미를 도입했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죽은 몬스터들의 영혼들이 있는 플로어입니다.
지금까지 플레이하면서 죽여온 몬스터들의 영혼이 있고, 말을 걸면 한마디씩 하면서 성불하죠.
고스트는 "제발 디아는 쓰지 말아줘!" (디아 : 聖 속성 마법) 라고 하면서 성불하고, 어떤 몬스터는 "사실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몬스터는 "그냥 우리 공주님 좀 보려고 나왔다가 죽었어"하면서 한탄하기도 하고...
저 영혼들 중에는 초반에 상대했던 보스몹인 아스토스나 뱀파이어도 있고, 말을 걸면 복수하려고 싸움을 걸기도 하죠. 그래봤자 이젠 잡몹수준이라...
여태까지 플레이해오면서 만난 몹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 외에도 여러 플로어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들은 저것들이네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아래 플로어, 3번째 보스가 나오는 30층 고정 이벤트.
30층에 도착하게 되면 파이널 판타지 1 게임오버 BGM이 들려오면서, 저주받은 마을에 도착하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전부 저주인지 뭔지 모를 것 때문에 피부가 하얗게 변해버렸고 말을 걸면 도와달라면서 신음하죠. 몇몇 사람들은 아예 돌이 되어 굳어버렸어요. 그야말로 끔찍하고 처참한 광경이에요.
모든 것의 원인은 중앙에 있는 집 안에 있는, 본 던전 3번째 보스 때문에 벌어진 것. 주인공들은 저주받은 마을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이 사태의 원인인 3번째 보스에게 도전합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mins_up/130011577315)
그 정체는 파이널 판타지 6의 마열차.
저는 무슨 미친 악마나 뭐 그런 걸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열차가 나오더라고요. 정말 희안했어요.
대체 왜 마열차가 마을에 나타난건지, 이 열차가 무슨 짓을 했길래 마을이 저 지경이 되었는지 등등이 의문스러웠지만 앞서 마을 분위기에 압도된지라 신경 안 쓰고 보스전을 치루었죠. 그랬더니...
저주받은 마을에는 꽃이 피고, 마을 사람들은 석화에서 풀려나고 다시 생기를 되찾았죠.
오히려 이게 던전 마지막 보스한테 가야했던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던 보스 이벤트였어요.
바람이 속삭이는 동굴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이 플로어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에요.
단순히 몬스터만 잡는 던전이 아닌, 퍼즐적인 요소도 있고, 재정비할 수 있는 구간도 있는데다가, 인상적인 보스 이벤트까지 있는 던전.
그래서 다른 소울 오브 카오스 던전보다 바람이 속삭이는 동굴이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