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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 없다" 라는 표현은 과연 틀린 것일까

SiteOwner 2020.06.07 20:15:27
요즘 많이 쓰이는 말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1도 없다" 라는 표현.

여기에 대해서 노골적인 거부감을 노정하면서, 이 표현은 틀렸고 "하나도 없다" 라고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것만큼은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약간 의외의 이유가 있습니다.
수량을 파악하는 방법은 크게 디지탈(Digital)과 아날로그(Analogue)가 있습니다. 디지탈은 불가분의 사물을 한 단위씩 세어 나가는 방식이고, 아날로그는 가분의 사물을 연속량으로 인식하여 분할하는 방식. 조금 말이 어렵습니다만, 쉽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계단을 몇 개 올라갔느냐가 디지탈 방식인데 반해 언덕을 몇 미터(m)나 몇 피트(ft) 올라갔는가가 아날로그 방식.

그렇다면 예의 "1도 없다" 는 아날로그 방식일 수도 있고 디지탈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아날로그 방식이라면 하루의 24시간 분할이나 백분율의 100분할 등의 방식에서 한 단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또한 디지탈 방식이라면 대전액션게임에서의 체력게이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딱 한 칸만 남아있는 경우를 상정하면 되겠습니다.
반면에 이와 대조적으로 "하나도 없다" 는 확실히 디지탈 방식인 것.

여기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 "하나도 없다" 가 디지탈 방식이니까 맞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의 의문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 경우에는 "1도 없다" 는 아날로그 방식일 경우에 틀리고 디지탈 방식일 경우에 맞는, 그리고 어느 방식으로 쓰였는지는 그 표현이 들어간 문장이 완성되어야 확정되는 황당한 상태가 됩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아니고 말이지요.
그렇다면, 또 이런 질문도 제기가능합니다.
애초에 아날로그, 디지탈 등의 계수방식에 대해서, 어느 쪽을 채택했다는 이유만으로 틀린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도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이 질문을 만족시키지 않는 이상, 어느 것이 틀렸는가에 대한 논박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도 없다" 라는 표현을 바르게 규정했으니까 그것이 아닌 "1도 없다" 는 틀렸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것은 "옳기에 옳다" 라는 순환논리에 지나지 않아서 건설적인 주장이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설득력이나 정당성이 창출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1도 없다" 라는 표현에 열내면서 그 표현이 틀렸다고 주장해 봤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생각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