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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우주선을 타지 마오"

마키 2020.02.25 01:09:41

* 제목은 진모영 감독의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My Love, Don't Cross That River, 2014)"의 패러디.



이미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를 되돌아보며, 비극적으로 끝난다는걸 알면서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마음은 슬프기 그지없네요.


유튜브에서 다큐멘터리 "우주로 간 영웅들(Rocketmen, 2009년 BBC 제작)" 1부-안타깝게도 유튜브에 2부는 없었습니다.-를 봤습니다. 스페이스 셔틀 "디스커버리 호"의 이륙으로부터 시작하는 다큐멘터리는 유인 궤도 비행을 이룩한 "머큐리 계획", 지구 궤도에서의 랑데부와 EVA(Extra-vehicular activity, 우주선외활동)를 성공시킨 "제미니 계획"이 이를 계승한 "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우주에 대한 도전을 담아내고 있죠.

(이하의 내용은 "https://www.youtube.com/watch?v=pk5Agbb-3eU"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감상하실 분은 링크로.)



수많은 실패를 발판 삼아 1961년 5월 5일에 머큐리 계획의 일환으로 발사된 프리덤 7호(FREEDOM 7)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유인 탄도 비행에 성공합니다. 미국이 처음으로 우주라는 무대에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죠. 그로부터 두달 뒤인 1961년 5월 25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우리는 60년대 안에 달에 사람을 갖다놔야 한다"고 발언하며 그와 동시에 소련과의 달 착륙 경쟁이 시작됩니다. 이 발언은 다음해 9월 12일의 라이스 스타디움 연설에서 저 유명한 "우리는 어렵기 때문에 달에 갈 것이다"는 포부로 모두에게 공언되죠.


아직 유인 비행조차 이제 막 간신히 성공한 상황에서 이러한 케네디 대통령의 호언장담은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였지만, 머큐리 계획으로 궤도 비행에 성공하고, 동시에 진행된 제미니 계획을 통해 유인 궤도 비행, 랑데부, EVA, 우주공간에서의 도킹 기술 습득 등 훗날의 달 착륙을 위해 필요한 선결과제들을 숨돌릴 틈도 없이 우주선을 만들고 우주인을 태워 쏘아올리며 필사적으로 배워나갑니다.


머큐리 계획과 제미니 계획이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마침내 역사에 남을 아폴로 계획이 시작됩니다.


리버티벨 7호를 조종했던 거스 그리섬, 제미니 4호에 탑승해 처음으로 EVA를 수행했던 에드워드 화이트, 해군 소속으로 이런저런 군용기를 조종하다 배속된 로저 채피가 AS-204 미션에 투입됩니다. 훗날 "아폴로 1호"라고 명명되는 AS-204 미션은 아폴로 계획에 사용될 사령선과 기계선의 훈련 및 테스트 미션 중 하나였죠.


하지만 1967년 1월 27일. 순식간에 벌어진 화재가 사령선 캡슐을 집어삼키고, 탑승해있던 우주비행사 3인이 순직하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아폴로 계획이 시작되어 아폴로 1호라는 언급이 나오며 저 3인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이미 이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알고 있던 입장에서는 머릿속에서 계속 "안돼요. 그거 타면 안돼요..."라는 말만 맴돌았죠.


이렇게 시작하자마자 우주비행사 3명이 순직하며 좌초될 위기에 처한 아폴로 계획.


(이하는 다큐멘터리에선 언급되지 않는 내용입니다만 다큐멘터리가 다루지 않는 내용이므로) 사건의 원인은 100% 순 산소로 채워진 사령선 내부의 공기, 설계결함으로 문을 열고닫을때 전선 피복의 손상으로 인한 스파크, 리버티벨 7호의 대기권 재돌입 당시 비상분리장치 오작동으로 해치가 열려 바다에 빠져 죽을뻔한 경험을 토대로 출입문의 설계를 바꿔달라는 거스 그리섬 본인의 요청에 의해 기체 내부로 열리도록 변경된 해치-이것이 결국 화재사건 당시 내부 압력 상승으로 문이 열리지 않는 원인이 되었죠.-등 다양한 이유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결과였습니다.


후에 아폴로 8호의 사령관이 되는 프랭크 보먼이 "순직한 동료들이 자신들의 희생으로 달 착륙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건 바라지 않을거다"라고 진상 위원회를 필사적으로 설득한 끝에 간신히 아폴로 계획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었고, AS-204 미션은 이 사고의 여파와 유족의 요청으로 아폴로 계획으로 승격, "아폴로 1호"라 명명됩니다. 17호까지 지속된 아폴로 계획 전체를 통틀어 13호와 함께 단 둘뿐인 실패한 미션, 그리고 아폴로 계획의 유일한 인명피해로 기록된 이 참사의 교훈을 통해 사령선의 설계가 골격부터 완전히 새로 뜯어고쳐지죠.


(이하 다시 다큐멘터리 본편으로 이어집니다.) 프랭크 보먼의 필사적인 설득으로 간신히 재개된 아폴로 계획은 본래 새턴 로켓의 성능 테스트 미션이었던 AS-501~AS-503 미션이 졸지에 아폴로 4~6호로 명명되어 정규 미션으로 승격됩니다. 아폴로 1호의 진상 규명을 위해 상당한 시간이 흘러 너무나도 촉박해진 시간 제한 탓에 사령선과 궤도선의 첫 유인 비행이었던 아폴로 7호(1968년 10월 11일), 새턴 로켓과 사령선의 첫 유인 달 궤도 비행이었던 아폴로 8호(같은 해 12월 21일), 달 착륙선 "스파이더"의  첫 유인 궤도 비행이었던 아폴로 9호(1969년 3월 3일), 달 착륙 자체를 제외한 이륙에서부터 귀환까지 최종 리허설이었던 아폴로 10호(같은 해 5월 18일) 미션이 단 7개월 만에 차례차례 이어집니다. 리허설이고 뭐고 없는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건 실전이었죠.



이러한 피와 땀과 눈물과 희생을 안고 각고의 노력이 이루어낸 아폴로 계획은 마침내 1969년 7월 16일 13시 32분 0초,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인 달 착륙 미션을 위해 아폴로 11호가 이륙하는 모습을 끝으로 다큐멘터리  1부가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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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간만에 재밌게 본 다큐멘터리에서 아폴로 1호 파트를 보며 느낀 슬픔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버릇대로 아폴로 계획을 통으로 해설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