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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수업] 도시 이야기 #3

Lester 2019.11.12 01:16:29
(#2에서 이어집니다.)


Nighthawks-oil-canvas-Edward-Hopper-Art-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그림 하나 보시죠. 이제까지 몰랐다가 일본 만화 "갤러리 페이크"를 통해 알게 된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입니다. 솔직히 그림 형태의 예술이라고 하면 그냥 교과서에서 봤던 모나리자나 최후의 심판 정도만 알고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 적은 없었고 그나마 관심을 가진 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이었습니다. 음모론 소설 다빈치 코드나 게임 어쌔신 크리드 2 등의 영향도 있지만 그림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했던 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저 그림에 끌리게 되었냐면, 저것이 제가 소설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바와 굉장히 밀접하게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도시 이야기에선 살기 팍팍해도 막연하게나마 환상과 희망을 품었던 일화나 그런 내용을 다룬 작품들을 주로 다뤘습니다만, 현실이 항상 그렇게 희망차지만은 않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제 일상이 음울하게 흘러가다보니 소설에도 그런 기미가 언뜻언뜻 묻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이 대목을 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저 그림을 보았을 때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핏 보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즐기는 것 같지만, 너무 먼 곳에서 쳐다보며 인물들을 구석에 몰아넣어서 그런지 불안감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몇몇 리뷰에서는 현대인의 고독(#1)이나 무정함(#2)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 호퍼는 진주만 습격이 벌어진 직후에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전인 1929년에 세계 대공황까지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거리에도 수많은 의자에도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점에서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들 어디 있는 걸까요?


지금 제 소설에 범죄적인 요소가 가득한 것은 (예전부터 계속 말했듯이) GTA 팬픽의 영향도 있지만, 이렇게 불안한 상황을 불법적인 수단으로나마 타개하려는 제 심리가 은연중에 나타나는 것도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영화 "조커(2019)"의 짤막한 리뷰에서도 그랬듯이 사람이란 궁지에 몰리면 극적인 행동을 취하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저는 그 '경거망동'의 결과와 대가를 잘 알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주인공 일행이 곤란한 사람들 대신 손을 더럽히는 쪽으로 쓰고 있지만 말이죠.


하지만 어느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든 망설여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를 해결했으니 불법적인 해결사가 있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나도 모르게 로빈 후드 놀이에 취해서 그 쪽으로 흘러가진 않을지? 뭐 그에 대한 대책으로, 무책임하긴 하지만 '양쪽 모두의 의견을 쓰고 독자에게 해석을 맡긴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꼭 독자의 해석이 아니더라도, 이거 아니면 저거 식으로 딱 부러지게 나눌 수 없는게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싶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묘미'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네요. 누군가에겐 굉장히 곤란하거나 괴로운 상황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묘미'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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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무 범죄물이나 블록버스터급 액션신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 같은 에피소드에도 초점을 맞추고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인간관계가 넓지 않거나 사회생활을 많이 해보지 않은 탓인지 '살다보면 이럴 수도 있는 거지' 같은 소재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오 헨리의 단편들처럼 이름은 아무래도 좋을 일반인들의 사건사고를 다루고 싶은데, 너무 시시할 거라는 편견 탓인지 극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탓인지 그나마 잡은 소재도 놓쳐버립니다.


극약처방으로 가가탐정사무소나 ARIA, 바텐더, 마인탐정 네우로(?!) 같은 작품들에서 개성적인 요소(각각 홈즈 매니아, 뱃사공, 칵테일, S(…))를 빼고 스토리라인만 가져다 쓰면 되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더구나 미국의 일상생활이 어떤지 몰라서 급한 김에 '트와일라이트 시티는 미국에서 가장 동양적/다문화적인 도시다'라는 설정까지 만들어 넣고 대다수의 설정은 상술했던 일본계 작품으로 때우는 중입니다. 그러면서도 약간 생활양식의 차이(미국에는 코타츠가 없다든가...)만 빼면 그런 특이한 일들을 일본인만 겪으란 법은 없다며 위안으로 삼으면서 계속 소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중언부언하며 이야기를 하다 말았습니다만, 오늘의 핵심은 그 정도가 되겠네요. '세상에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라는 것. 여기서 '그러니 인생 별 거 없다'로 끝맺을지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다'로 끝맺을지가 관건인데, 지금도 굉장히 망설여집니다. 독자도 작품도 아닌, 요즈음 제 심신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