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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괴물은 원자력인가, 인간인가

마키 2019.07.04 15: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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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체르노빌 1화 中, 노심 붕괴로 누출된 방사능의 영향으로 공기 중에 환한 빛이 뿜어져나오는 모습을 구경하는 프리피야트 시민들.)




간만에 특수촬영물(특촬물)이 아닌 드라마를 감상하고 있습니다.


전쟁 드라마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 더 퍼시픽, 제네레이션 킬, 그리고 근래 미국 드라마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왕좌의 게임등을 제작한 HBO 제작의 5부작 미니 시리즈로 제목은 "체르노빌(Chernobyl)".


그?직설적인 이름 그대로 드라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1986.04.26 01:24 AM)가 일어난 직후의 체르노빌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드라마라는 장르 특성상 어느정도 인물이나 상황의 각색, 창작이 곁들여졌긴 하나 원자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프리피야트 시민들, 단순히 핵발전소 화재라고만 듣고 현장에 투입된 체르노빌 소방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피폭을 받아야했던?발전소 직원들, 눈 앞에서 대참사가 벌어진 상황에서 모른 척 하려고 애를 쓰는 발전소 부소장 아나톨리 댜틀로프(Anatoly Dyatlov)와 고위층 직원들, 그리고 이 사고를 어떻게 덮을까 고민하는 소련 당국의 정치인들 까지, 당시 체르노빌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드라마는 발전소 사고 자체보다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시선을 비춰가며?목숨을 바쳐가며 사고를 수습하기위해 헌신하는 노동자들, 진실을 알리기위해 분투하는 과학자들, 이들을 물밑에서 지원해주는 소수의 공무원들을 통해 그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다룬 매체가 사고 자체에만 집중하느라 묘사하지 못했던 "나라가 위기에 봉착하자 죽는다는걸 알면서도 기꺼이 목숨 바쳐 헌신하려는 소련 인민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는 것도 특징.



특히 부소장 아나톨리 댜틀로프를 담당한 폴 리터의,?노심 붕괴 직후?난장판이 된 발전소에서 감속재인 흑연이 사방에 나뒹굴고 있고, 그걸 본인의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노심이?터져서 흑연이?노출됐다고 보고하는 부하 직원에게 "흑연은 없었어! 거기에 흑연 따윈 없었는데 자네는 대체 뭘 봤다는건가!" 라고 윽박 지르는 무능한 높으신 분 연기는 그야말로?1화 최고의?볼거리.


한편, 저선도 선량계로 계측한 방사능 수치는 고작 3.6 뢴트겐,?좀 더 고급 선량계로 계측한 수치가 200 뢴트겐(모두 해당 선량계가 계측 가능한 최대치. 즉 성능에 관계없이 전부 값이 설정된 최대치=측정불가능으로 나오는 상황.)으로 나오자 "좋은 건 아니지만?위험하지도 않군(3.6. Not great, not terrible)"이라고 애써 별일 아니라고 부정하는 높으신 분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 이러한 높으신 분들과 정 반대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파괴된 발전소 노심에서 뿜어져나오는 형형색색의 방사능 불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구경하는 프리피야트 시민들의 순진한 모습과 핵발전소 화재 사고라는 보고만 듣고 출동해 방사능에 오염된 자재들(다른 것도 아니고?노심의 감속재 였던 흑연 덩어리들...)이 나뒹구는 환경에서 맨몸으로 화재를 제압하기위해 애쓰는 체르노빌 소방대원의 모습은 비극적이다못해 눈물나기까지 할 정도...



드라마에서도 묘사되고 후에 소련 정부가 본격적인?사고 수습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제대로된 선량계로 측정한 체르노빌 원전의 방사능 수치는 댜틀로프가 보고한 3.6의 4천배를 훌쩍 넘는 무려 1만 5천 뢴트겐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치가 측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