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정너라는 약어로 잘 알려진 개념인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 라는 사고방식.
이것이 일부 기성세대의 구태의연하고 완고한 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이건 정말 누구라도 남보다 조금 더 말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쉽게 남발됩니다. 그것을 저는 20대에 직장생활을 할 때 이미 겪었습니다.
대형 학원의 강사로서 활동하던 어느 해.
담당과목인 과학은 저 이외에도 다른 두 강사와 함께 3명이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경력이 가장 짧은 사람은 저로, 다른 두 강사 중 연장자인 K선생은 창업 당시부터 있었던 듯하고, 동갑인 Y선생은 저보다 1, 2년 정도 빠르게 입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Y선생이, 자신이 선배니까 반 배정에는 자신의 말이 기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라고 해서 얕보지 말라고 하는데, 왜 그 말이 거기에서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당시 그 학원은 중등부의 경우 한 학년에 학원의 분반이 9개, 그래서 한 강사가 한 학년에 3개반씩 모두 9개반을 담당하는 방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신입 강사로, 일단 가장 실력이 떨어지고 문제있는 3개반을 한번에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 문제도 학기초에 한정되고, 중간고사가 지나자 가장 실적이 좋은 반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그 반으로 분류되었던 학생들이 학교의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는 50점을 넘게 받기도 힘들었는데, 담당 후 첫 중간고사에서 담당반 학생 대부분이 80점대 이상에 진입성공했습니다.
그러자 문제의 Y선생이, 좀 잘 가르친다고 잘난척 한다고 저의 면전에서 비아냥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떨거지 학생들은 어차피 잘 가르쳐봐야 떨거지이지, 자신이 가르치는 최상위권 반이야말로 학원 최고의 엘리트이고 기대주라면서, 학생들을 모욕하는 말도 했습니다. 어차피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니까 계속 무시했더니 저에게 대뜸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라고 소리를 빽 질렀습니다.
저는 당장 손에 쥐고 있던 나무 지휘봉을 꺾어 부수고, "그래, 여기 있다, 어쩔래?" 라고 더 크게 소리를 질러줬습니다.
그 Y선생은 아무말도 못하고 있다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자리를 피했고 그 이후로는 계속 저를 피했습니다.
정기 분반조정의 시기가 다가왔는데, 그 Y선생이 저에게 서류를 한 장 내밀었습니다.
어느 반을 담당할 건지 고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K선생과 Y선생은 3반씩 고른 상태이고, 저에게는 선택지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서류와 Y선생의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안 고르세요?"
"먼저 결론 다 내놓고, 누구더러 뭘 고르라 해요? 아, 그러고 보니, 전 뭐 이런 인간이었죠. Y선생님 말씀대로. 그때 여기 있다고 대답드렸는데 그때는 왜 피하셨는지?"
그 Y선생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분반조정 서류를 다시 뽑아 와서 저에게 먼저 고르라고 했습니다.
"언제는 선배니까 Y선생님 말씀이 기준이라면서요? 이제는 선후배 역전입니까, 아, 뭐 이런 인간이니까."
나중에 다른 학원으로 이직하자, 학생들의 반 이상이 제가 옮긴 학원으로 옮겨 왔습니다.
그리고 원래의 그 학원은, 저의 이직 및 학생들의 대거 이탈로 경영난에 빠졌다가, 그 Y선생을 해고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