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부터 철도지하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알았는데, 현역 정치인의 발언으로 그 지하화가 구체적으로 표면화되었기에 간단하게 다루어 볼까 싶어요.
오늘,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자는 서울개벽 프로젝트 제하로 서울특별시내의 국철 6개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복안을 제시했어요(조선닷컴 2018년 5월 28일 기사 참조).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지하화되어야 할 구간은 다음과 같아요.
둘째, 벤치마킹 대상이 틀렸다.
우선 뉴욕 지하철부터. 낡고 더러워서 편의성은 일찌감치 포기한 지 오래이고, 그나마 9.11 테러 이후에 경계를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절도범 문제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어서, 문제점의 근본적인 해결은 기대할 수 없고 단지 지하에 은폐한 것과 다름없는 그 뉴욕의 교통사정을 벤치마킹하자는 것인지, 어이가 없어지네요.
런던 지하철은 세계최초의 지하철인만큼 문제점도 그 역사만큼이나 많이 지니고 있어서 반면교사가 될 수는 있지만 좋은 롤모델이 되지는 못해요. 저규격에 의한 확장성의 한계, 복잡한 운행계통과 그로 인한 복잡한 분기, 운휴상황, 그리고 연약지반 위에 지어져서 설비의 설계방식 등에서 다방면에 제약이 가해지는 태생적인 한계 등으로 대표되는 런던 지하철은 서울의 철도개발에 반면교사는 될 수 있어도 모범답안은 될 수 없음이 명백해요.
기존노선 지하화의 사례로서 후쿠오카시 지하철 공항선(福岡市地下鉄空港線)의 건설과정에서 일본국유철도와 후쿠오카시 교통국이 해당구간을 공동운항하기로 하면서 일본국유철도 치쿠히선(筑肥線)의 하카타(博多)-메이노하마(姪浜) 구간을 폐지한 건을 거론할 수도 있지만, 후쿠오카는 인구 157만명의 도시인데다 통근/통학 시간대가 아니면 일단 지하철 내에서 높은 확률로 앉아서 갈 수도 있을 정도로 수송밀도도 낮은데다 지하철 기본운임이 200엔으로 상당히 비싼 편이죠(JR큐슈의 경우는 160엔). 그래서 후쿠오카 지하철은 성공적인 사례일 수는 있지만 서울에는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어요.
셋째, 철도에 대한 전제와 주장이 모순된다.
철도가 시민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고 지역을 단절시켜 왔으니 철도를 지하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이없네요.
그러면 아예 처음부터 철도폐지론을 주장하는 게 답이 아닌가요? 결국 위에서 언급된 뉴욕이나 런던의 경우는 그 문제점을 발본색원한 게 아니라 땅 속에 갖다묻은 것이니까요. 게다가 도쿄나 오사카같은 아주 좋은 반례도 있다 보니 그 주장은 받아들이고 싶어도 설득력이 부족하니 안되겠네요.
게다가 이 발언도 문제.
“철길은 어두운 곳, 못 사는 동네란 공식은 이제 과거 얘기가 되고 빈곤의 상징 같았던 철길은 축복이 될 것” 이라는 발언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결국 퇴치의 대상으로 전제하면서, 주장은 그 전제와 모순되니까요. 대체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요? 반례도 얼마든지 있어요. JR큐슈의 카고시마본선(鹿児島本線) 연선 같은.
넷째, 공사추진 및 공사비조달에 대한 발상이 안일하다.
중요한 것은 공사비 산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초기비용을 이미 얼마나 조달하였고 추가비용은 또 어떻게 얼마만큼이나 조달했는지의 문제. 사업수익으로 충당하고 남는다면, 빚이라도 내서 강행할 예정이었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이전에, 이게 서울시장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지 자체가 의문에 남아요.
우리나라의 대규모 사업은 예상과 실제의 간극이 꽤 큰 편이죠. 비용은 지나치게 적게 잡고, 효과는 부풀리고, 그래서 도중에 돌발변수가 생기면 그 예측이 크게 빗나가고 말아요. 게다가 경제논리는 온데간데없이 정치인들이 정치논리로 이리저리 손을 대어서, 그나마 극복가능한 작은 악재가 구조적인 큰 악재로 자리잡는 경우도 이미 비일비재한 상황인데, 충분한 대비 없이 사업수익으로 공사비를 감당할 수 있다는 낙관이 얼마나 적중할까요? 만일 안 되면 어떻게 할 셈인지 묻고 싶어지네요.
그렇기에, 이 4가지 쟁점만 놓고 봐도, 철도지하화 공약의 건전성에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진정한 현명함은 무엇을 주장하는 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주장에 어떤 명암이 있는지를 알고 어떤 반대의 목소리가 있을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도 있음을 알기를 바랄 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