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처럼 소설에 사용하는 캐릭터든, 단순히 머릿속에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캐릭터든 상관없습니다. 역시 지난 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인데, 해당 글을 쓰고 몇몇 분들과 대화하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의외의 결론이 나오더군요.
"사실 동기 그 자체보다는 저지르냐 아니냐의 문제 아닌가?"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제 작품의 레스터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법을 어기는 행동(필요하다면 방어적 살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저도 여기까지는 문제없이 쌓아왔습니다. 그리고 저런 신념(?)이 서 있으면 어떤 동기를 넣더라도 그럭저럭 이야기가 납득이 됩니다. 문제는 저렇게 생각을 다 하고 나서 움직이지 않으면 뭐가 되는가, 이거죠. 이미 몇 번 썼습니다만 초창기에는 막 GTA 팬픽답게 도시를 완전히 작살내고 다녔는데(…), 나이를 먹은건지 없던 사회성이 생긴건지 글쓰기도 점점 몸을 사리게 되었습니다. 손해 보기 싫으니까, 혹은 나 자신에게 납득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려는 게 글쓰기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이걸 전문용어로 게으르다고 하는 거지만.
막말로 '레스터는 처음부터 이미 노답 범죄자였고, 범죄자가 된 동기는 서서히 떡밥을 풀며 밝혀질 예정'이라고 하면 모든 게 명쾌하게 풀립니다. 황당할 정도로요. 그런데 왜 저는 계속 선한 이미지에 연연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컨셉으로 가더라도 '하얀 거짓말' 정도는 하게 될 예정입니다만, 이건 이것대로 앞뒤가 안 맞는 것 같단 말이죠. 하얀 거짓말이랑 사람을 패는 거랑 사람을 아예 죽여버리는 거랑 뭐가 다른데? 또 그 결과가 좋은 게 확실하다고 해도 안 할 거야? 캐릭터와 스토리 구상을 할 때마다 저런 질문을 자주 던지곤 합니다.
막말로(2) 레스터가 아닌 다른 주인공이었다면, 위의 경우보다 더 명쾌하게 풀립니다. 증오스러울 정도로요. 아무래도 저 자신을 담지 않은 캐릭터니까 천하의 (이하생략) 같은 행동을 해도 저로서는 찔리지 않겠죠. 너무하다 싶으면 수위를 낮추든지, 주인공을 없애버리든지 하면 되고. 그런데 지금 만들고 있는게 세계관 대통합물이라서 그런지, 다른 녀석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지는 않네요. (방금 이 문장을 쓰다가 든 생각이지만) 레스터는 정의의 편에 남겨두고 범죄자 쪽(그러니까 존 휘태커보다 훨씬 인간의 선을 넘어선) 주인공을 만드는 게 좋을까요? 그래서 악당 주인공이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면 레스터가 뒷수습을 하고, 나중에 최종결전을 벌인다...? 얼핏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곤란하네요. 그럼 존의 입장이 애매해지니까요. 더구나 브로맨스 소리 듣기 딱 좋게 룸메이트이기도 하고. 유일하게 미드 중에 재미를 붙인 블랙리스트처럼 리지를 범죄계로 끌어들였지만 필요 이상으로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자신만의 큰 그림을 그리는 레이먼드 레딩턴 같은 컨셉도 생각해 봤지만, 레스터와 존이 혈육도 아닌데 그럴 만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고요.
혹시 자신을 모델로 한, 혹은 자신이 어느 정도 투영된 오너캐라서 해당 캐릭터의 특성이나 행보에 대해 곤란함을 느끼신 적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