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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백수오 사태, 그리고 2년 뒤의 소비자 패소

SiteOwner 2017.09.01 21:50:06
2년도 더 전에, 가짜 백수오 사태가 국내 통판업계에 던진 두 가지 문제 제하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글에서 문제삼은 쟁점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속이고도 책임지지 않는 판매자의 등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국사회의 신뢰수준을 낮추는 본격적인 트렌드의 시작입니다. 이게 그냥 기우로 끝나면 좋겠다 싶었는데, 정작 법원 판결을 보니 기우가 아닌 것 같군요. 비록 지방법원 단계이지만, 집단소송에서 소비자가 패소했습니다.

기사를 하나 보겠습니다.
[2017년 9월 1일 연합뉴스 보도] '가짜 백수오' 소비자들, 제조사·판매처 '집단소송'서 패소(종합)

기사에서 보이는 논지를 요약하면 대충 이 정도가 되겠군요.
  1. 소비자들이 제기한 "백수오 포함여부 확인 불가능" 주장에는 증거가 부재
  2. 제조과정 특성상 백수오나 이엽우피소의 DNA 검출불가
  3. 제조업체가 공급받은 원료에 이엽우피소가 없었으니 이엽우피소 혼입 단정불가

그래서 이러한 논지에 의해서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이 패소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2년 전 통판업계를 들쑤셨던 그 소동은 대체 무엇이었다는 건지, 그럼 누군가의 거짓말로 촉발된 소동이었는지, 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아직은 지방법원 단계의 판결이긴 한데, 고등법원, 대법원 단계에서까지 동일한 결과가 난다면,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속이고도 책임지지 않는 사태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소비자들이 문제제기를 해봤자 제조과정의 특성상 문제되는 원재료가 혼입되었는지조차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그냥 넘어가면 그게 만능의 방패가 될테니까요. 이전에 예측했던, 퀄리티의 문제를 넘어선, 아예 먹어서 안되는 것을 팔아놓고도 무책임하게 일관할 수 있는 사태가 판례로 보장되게 생겼으니, 소비자인 게 죄인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이렇게 제조단계에서 면책되는 이상, 이제 판매채널도 면죄부를 자동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판매채널은 더더욱 판매상품에 대한 검증을 안해도 될 것입니다. 제조과정에서 오류가 없으니 그 제조품을 가져다 파는 판매업체는 일반소비자에 팔아서 돈만 챙기면 그만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건 증거없이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의 잘못이고, 그 제조품을 먹고 몸에 문제가 생기면 기왕증, 즉 이미 전부터 있었던 문제가 나타났을 따름이라고 주장하면 그만입니다. 2년 전에는 그나마 소비하지 않은 분량에 대해서는 보상하겠다는데,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그마저도 전혀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아주 무서운 것 하나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학습효과. 그것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의 학습효과입니다.

안전성 등을 확인할 수 없고 검증의 정확성조차 기대할 수 없는 원료로 만든 식품을 온갖 미사여구와 현란한 이미지를 동원해서 광고를 한다 한들 그것을 그대로 신뢰할 소비자가 계속 생겨줄지는 의문입니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자기 돈을 들여서 정체불명의 것을 먹고 건강의 위해를 자초하고 기분나쁘고 억울한 감이 들게 행동할 리는 없을테니, 결국 해당 시장은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언젠가는 쇠퇴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쇠퇴하더라도 업계 관계자 이외에는 누구도 아쉬워할 게 없을 것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퀄리티의 높고 낮음 문제가 아닌,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독성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거나 하는 등 당장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상품이 횡행하고 그것들이 판례로 보호받는다면, 정당한 상거래 질서는 무너지게 됩니다.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어 팔기보다는 속임수를 쓰는 게 당장에 큰 돈을 끌어모으기보다 훨씬 쉽고, 그래서 사기범죄같은 것이 횡행하는 것인데, 법이 그런 것을 지양하지는 못할망정 지향하게끔 만드니 이게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인간이 매일 소비해야 하고 영향이 직접 미칠 수밖에 없는 식품류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할텐데, 이 판례로는 나중에야 어떻게 되었든 간에 식품안전기준을 완화해서 돈을 벌 사람은 벌라고 판을 짜 주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온라인 뉴스 사이트에서 이런 의견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못난 나라를 가 보면 물건이 우선 거짓말을 한다."

국가의 수준은 자국 생산품으로 알 수 있고, 따라서 국격은 제품에 반영된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명쾌하게 나타낸 것이라서 꽤 오래전에 본 것인데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의 그 의견이 잊혀지지 않는 건, 요즘 이런 식으로 신뢰수준을 또 낮추고 그것을 제도화하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게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라 밖도 시끄럽고 나라 안도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이런 점에는 너무도 조용하군요.

게다가 타고난 전사들같은 정치인들도 이런 쪽에서만큼인 일침이 너무나도 아까운 나머지 쓰려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안방의 세월호라고도 불리게 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이렇게 시작은 조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형태로 고통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늦어도 한참 늦은 다음이었습니다. 과문의 탓인지는 몰라도 가짜 백수오 문제에서는 사망자가 없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이런 건 그냥 없던 것이 되어도 괜찮다는 것일까요.


식품안전에 보다 경계를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가기만 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신뢰성은 더욱 낮아질 것 같습니다. 이 사회에서 잘 살아남으려면, 더욱 의심해야겠지요. 그리고 건강기능식품에 대해서는 전부터 관심이 없던 태도를 계속 유지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