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여년 전의 문헌이나 기사 등을 읽어보더라도 여류라는 표현은 심심찮게 볼 수 있어요.
여류(女流). 요즘은 거의 사어가 되다시피 한 것이었지만, 예술작품의 창작자나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여성인 경우에는 이런 말이 붙는 경우가 많았어요.
사실 여류 운운하는 것이 조금만 생각해도 모순이 몇 가지는 바로 나올 법한데, 창작자의 성별이 여성인 것이 그 창작물의 성격을 결정하는 변수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죠. 허난설헌, 아가사 크리스티, 프랑소와즈 사강, 미우라 아야코, 헤르타 뮐러 등의 문학가들이 모두 여성이지만 그들의 작품에 어떤 공통성이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예요. 이렇게 말할 것도 사실 필요없는 게, 남성 문학가들이 쓴 작품이 남성이라는 성별을 이유로 동질적일 수도 없는 것에서 이미 여류 운운하는 것이 합리적일 담론일 수가 없는 게 증명되니까요.
그런데, 근년 들어서 이런 사조가 보이는 것 같네요.
여성이 이렇게 묘사되어서는 안된다, 여성이 등장하지 않으면 여성소외이다, 여성이 등장하면 어떻게 등장했느냐가 창작물의 주제의식이나 표현방법론보다 더 중시되다 못해 논점일탈성 논쟁이 벌어져 그것을 둘러싸고 진흙탕 싸움이 확대재생산되는 등, 뭔가를 말하기조차 두려운 광풍이 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과거의 여성 창작자 개인의 개성은 도외시한 채 여류라는 카테고리로 여성 창작자들을 무성의하게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보다 더 못한 풍조가 형성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과거의 여류(女流)라는 말은 거의 사장되었지만, 이제는 새로이 여류(女類)라는 새로운 인종구분이 창조되어 여성이라면 모두 동질적으로 여겨져야 하고 인간으로서의 개성, 취향, 관점 등이 부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이상한 발언이 속출하고 있어요. 이건 내용만 달라졌지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 등등의 그런 성역할 고정이 아니면 대체 무엇일까요. 꼭 이렇게 편가르기를 하고 싸워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대학 때가 생각나네요.
옷을 좀 신경써서 입으면 대학에 공부하러 왔나 몸팔러 왔나 등의 폭언을 일삼던 자칭 페미니스트.
성명을 풀네임으로 표기하는 것을 가부장제에 동의하는 반동분자 운운하던 자칭 페미니스트.
그런 자들의 패악질이 그냥 대학가 내의 치기어린 헛소리 차원을 벗어나서, 새로이 성역할 고정을 조장하는 사회사조로 부상해서 사회전반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것이 불쾌하기 짝없게 느껴지고 있어요.
여성이고 남성이고 이전에 인간임을 인식하는 게 그리도 힘들고 어렵고 싫은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