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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로 드러난 여교사 관련 도시전설의 공포

SiteOwner 2016.06.07 21:26:05

시작에 앞선 주의사항

이 글은 최근 일어난 강력범죄사건인 섬마을 여교사에 대한 집단성폭력사건에 대한 규탄 및 논평입니다.

비록 이 게시물에서 법학, 사회학 등의 학문에 기초한 관점이 인용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포럼에서 시사관련 주제를 다루기 위한 것이지 학술지 등에 게재될 것을 전제로 한 것도 아니고 언론매체에 인용될 목적으로 작성된 것도 아니기에 인용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참조한 정보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을 사전에 밝힙니다.

이 게시물은 이용규칙 게시판 제19조 및 추가사항에서 규정된 사항을 따라서 작성되었습니다.



중학생으로서, 그리고 고등학생으로서 보낸 1990년대 전반에 학교내에는 여러 도시전설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것들에는 특정 학교의 7가지, 10까지, 또는 100가지 비밀로 다 알게 되면 죽는다 어쩌고 하는 괴담에 불과한 허무맹랑한 것도 있었지만, 그 중에는 상당히 섬찟하고 잔인한데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힘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교사 관련의 것이 그러했었죠.

생각나는 것만 열거해 봐도 몇 가지는 나옵니다.

불량한 남학생들이 소풍, 수학여행 같은 때를 노려서 신임 여교사를 집단 성폭행하여 좋은 점수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데, 특히 음악, 미술같이 채점에 주관적인 요소가 압도적인 과목의 경우 이런 소문이 상당히 파다했습니다. 그것 말고도 젊은 여교사는 지역 유지 본인이나 그의 아들의 신랑감 1순위라는 말도 있는데, 그 혼인의 성립과정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혼하면 남자 쪽에서 술을 마시고 무용담삼아 이야기하는 것이 요약해 보면 성범죄로 굴복시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극악무도한 양상이 그냥 도시전설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은 사실이라는 것이 드러나는군요. 게다가 가해자들은 우발적인 사안임을 주장하여 면책을 꾀하려는가 하면, 범죄가 발생한 지역의 주민들은 서울에서는 토막살인사건도 나는데 젊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등의 미개한 발언을 일삼는 등 윤리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지역이기주의의 폐단의 끝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끔찍한 피해를 당하고도 최대한 침착함을 발휘하여 증거를 확보하여 용의자 특정을 가능하게 만든 그 여교사의 용기,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 당했던 그 범죄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그 남자친구의 용기가 있었기에 이러한 불의가 더 이상 판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현대사회에 시사하는 점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바로 생각나는 것들만 봐도 도시전설로만 치부되었던 여교사에 대한 성범죄가 실체로 드러난 것에 대한 공포, 폐쇄적인 사회에서의 윤리실종에 대한 공포, 이 문제로 더욱 심화되는 지역에 또는 지역간에 대한 불신과 공포의 확산, 현행 형사정책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감 등이 되겠군요. 간단히 말해서 이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의 신뢰수준이 생각보다 더욱 낮음이 확인된 셈입니다.


성폭력은 근절되어야 할 흉악범죄이고, 피해자에게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큰 후유증을 남기기에 한때의 과오 등으로 치부되기에는 그 죄질이 아주 악독합니다. 그런 동시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격살인의 시도도 번번히 이루어져서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가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성폭력은 건전한 사회구성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존재이면서 이상할 정도로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은 이중적인 지위를 지니고 있고, 이는 높은 암수율로 귀결됩니다. 암수율이란 실제로 일어난 범죄 대비 표면화되지 않은 범죄의 비율을 말하는데, 당장 성폭력의 경우 전체의 5% 정도만 표면화된다는 추정도 있다 보니 이 경우 암수율은 95%가 됩니다. 강도높은 수사를 벌인다면 아마 지금까지의 성폭력 범죄건수의 최소한 몇 배 정도가 될만큼 사례가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을 표현을 바꾸어 말해 본다면, 이번에 알려진 여교사 집단성폭행사건과 같은 강력범죄는 이전부터 만연해 왔지만 단지 표면화되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라는 것도 됩니다. 성범죄자가 뉴스에 나오는 그런 흉악한 인물이 아니라 흔히 보는 옆집사람이었다는 현실이 어찌 공포스럽지 않을까요?

그리고 폐쇄된 사회에서는 윤리 따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또다시 증명되었습니다.
우발적으로 한 범죄는 그럼 범죄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까. 우발적으로 했든 고의로 했든 이미 강력범죄가 발생한 사실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인데,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을 보니까 우발적이라고 강변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많은 판례가 음주상태에서의 범죄에 대한 판결이 엄격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 보니 가해자들은 이런 점을 노려서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 즉 형량 저울질을 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역주민의 반응 중에 어이없는 것으로서 젊은 사람들이 그럴수도 있지 하면서 사건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태도가 있는데, 이 한 마디로 해당 지역내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수준, 양성평등의 정도 등이 가늠됨은 물론이고, 폐쇄된 사회 앞에서는 도덕이든 법이든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무서운 사고방식이 바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역감정의 정당화에 아주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역감정을 건드릴까봐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진 초기에는 전라남도의 섬 지역으로만 알려졌다가 금주에 들어서야 신안군 흑산도라고 구체적으로 지명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사건이 민감한 시사현안인데도 불구하고 지역감정 문제로 비화될 여지가 다분히 있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해당지역에 대한 비난이나 해당지역의 물산 및 서비스에 대한 구매거부 의사가 해당지역에 대한 반대인지 그 지역의 사건에 대한 반대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지역감정의 정당화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해당지역에서의 자정능력이 없다면 양자를 구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마련입니다. 당장 저와 동생조차도 그 지역에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는데, 이것이 해당지역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지역을 기피하는 것이 되어 버리는 터라 난감합니다. 게다가 해당지역에 대한 비선호심리가 지역감정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해명하라면 이것 또한 상당히 어렵습니다.
언론에서 사건 발생지역을 처음부터 특정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고민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게다가 범죄자에 대한 교화가 과연 가능한 것인지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법률의 역사를 보았을 때 법률이 불의한 지배구조의 정당화를 위해 그 선봉장을 맡은 역사가 깊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완전한 것은 아니라서 불공정한 재판이나 납득하기 힘든 기교사법 등이 난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법학의 발전에 의해 범죄가 범죄가 개인만의 책임은 아니고 일정부분 사회의 책임도 있다거나 불의한 사회가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었고 그 결과 책임주의, 죄형법정주의, 피해자중립화 및 국가에 의한 피해자대위, 엄벌주의에서 교화주의로의 전환, 신체형 및 생명형의 축소 및 폐지, 고문이나 허위자백 강요 등의 반인륜적인 심문방법 불법화 등 등 많은 원칙이 근현대 형법에서 확립되어서 세계 주요국가의 법체계에 이식되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근현대 형법에서 확립된 제원칙이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닌데, 사회의 책임의 범위, 책임주의 및 교화주의에 대해서는 생각을 좀 달리 해야겠습니다.

물론 사회의 책임은 있습니다. 당장 교직원관사가 부실하게 관리되어 온 문제, 폐쇄된 지역에서의 관민유착의 행태 등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책임을 공동분담하는 방법이 범죄자에 대한 처벌기준의 완화로 작용해야 한다는 인과관계로는 연결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 사회적 책임은 사법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보완으로 달성해야 하는 것이라서 범주가 완전히 다른 사안입니다. 이것들을 섞어 버리면 공동책임은 무책임 같은 담론으로 흐르거나, 피해자에게도 귀책사유가 있다는 식의 피해자의 인격을 말살하는 방법으로 흐르기 쉽기에 이런 사고방식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그 사회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연좌제 정당화가 되는 터라 이것 또한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판단에 난점이 섭니다.

게다가, 우발적 범행임을 주장하여 플리바기닝을 도모하는 이러한 범죄자들을 교화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지 자체에 의구심이 듭니다. 즉 범죄로 얻는 이득이 범죄로 인한 손해를 감안하고도 더 크다는 점을 노려서 이익을 향유하려는 이런 범죄자를 과연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교화라는 개념은 지은 죄가 가볍고, 그 죄를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진정으로 뉘우쳐서 피해자와 사회가 납득하여 다시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성립되는 것입니다. 아니나다를까, 범인 중 1명은 이미 2007년에 대전에서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 이번에야 밝혀졌군요.

무서운 일입니다.
뜬소문같았던, 그러나 반증을 할 수 없었던 도시전설인 여교사에 대한 성폭력 범죄 도시전설이 실체있는 범죄로서 표면화되었고, 그 범죄자가 생활저변에 흔히 있는 학부모 및 지역주민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강력범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 지역내의 관습이 중요하다는 지역내의 목소리, 지역감정의 정당화와 확산에 힘을 실어주는 사회의 여러 면모 및 현행 형사법체계가 노정한 한계를 보니 이 사회를 살아가기가 너무나도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습니다.

이 사건에 대해 동생과 이야기하다 동생에게 당부했습니다.
사회경험이 적어도 되니까 위험한 상황은 최대한 모면하라고.
이렇게밖에 말해줄 수 없는 저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정책입안자라면 그래도 이러한 사회기조를 바꿀 목소리도 낼 있을텐데, 아니면 어느 정도로 재력이 된다면 사설경호원을 고용해서 배치할 수도 있을텐데 그렇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