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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기관 속 주판알

마드리갈 2014.06.25 22:46:02

에너지의 공급 없이 계속 작동하는 장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작동하는 기계장치를 영구기관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영구기관은 인류 역사 속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어요. 창작물에서 영구기관이 나옴은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수없이 연구되고 시도되었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요.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영구기관은 있지만 외압이나 여러 이유로 인해 빛을 못 보고 있다고. 하긴 대기업의 횡포로 우량 중소기업이 꺾여 버리고 마는 불공정한 사례가 많다 보니 이러한 주장에 꽤 타당성이 있어 보이긴 해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그리고, 원리나 구조에 대해서는 대단한 보안사항인 것처럼 말을 아끼다가도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수치를 잘도 제시하고 있어요. 매출이 조 단위도 아니고 경 단위라니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는데, 그 근거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사실 영구기관이 불가능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아요. 물리학의 법칙상 그건 안되는 거니까요. 이것은 1824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카르노가 열역학 사이클을 수식으로 정리해 두었어요. 한번 볼까요?

원리와 공식은 상당히 간단해요. 열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되면 열에너지가 줄어드니까 온도가 떨어지잖아요? 그러면 처음에 열에너지가 있는 상태의 온도를 고온, 열에너지가 다른 에너지로 전환되어 줄어든 상태의 온도를 저온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열효율은 (고온-저온) / (고온) 으로 정의되어요. 더 간단히 쓰자면 열효율=1-저온/고온으로 표현가능하죠. 이 공식을 이용해서 고온이 1500K, 저온이 750K일 때의 열효율은 0.5, 즉 50%가 되는 거예요. 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다 효율이 높아질 수 없는 게, 각 구성요소에서 조금씩 손실이 발생하니까요. 즉 카르노 사이클은 아무리 기관 자체에서의 손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열효율을 100%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저온이 0K가 되면 가능하겠지만, 절대영도에 가깝게는 할 수 있더라도 그 온도에는 도달할 수 없고, 그렇게 냉각시키는 데에 에너지가 필요한 것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까 안되는 건 절대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초과학문명의 외계인이 와도 안 되는 건 절대 될 수가 없어요.


여기까지 보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다른 발명과 달리 영구기관이 안되는 이유가 확실히 보여요. 그러니 여기에 집착을 가지는 건 그냥 돈을 버리는 짓에 불과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매달릴까요?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하나는 무식해서, 다른 하나는 다른 의도가 있어서인데, 정말 위험한 것은 그 다른 의도예요.


여기서 잠깐, 과학의 연구방법에 대해서 언급을 좀 해볼께요.

과학 연구논문이란 연구성과에 대한 기록이자 연구방법과 그 근거를 상세하게 기록한 매뉴얼이지요. 그 말은, 누구나 연구논문에 제시된 조건과 방법을 사용하면 누가 어디서 실험을 하든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이게 왜 중요하냐구요? 특허도 역시 동일하거든요.

특허출원은 어떠한 기술개발의 성과를 권위있는 기관에 등록하여 이 권리의 사용에 대해 일정 조건하에서의 배타적인 이익을 향유하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행위예요. 즉 출원된 내용대로 기관을 제작하면 누가 어디서 하든 작동해야 해요. 즉 과학 연구논문이나 특허출원이나 원리는 동일해요. 여기서 영구기관에 대한 특허출원이 안 되는 이유가 자동으로 나와요. 처음부터 될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내봤자 번번히 거부당하고 있어요. 이것을 대기업의 음모 운운하는데 어차피 자사 업무와 주요 경쟁사에 대한 대책으로도 바쁜 대기업이 할 짓이 없어서 그걸 막나요? 시종일관 말이 안되는 헛소리일 수밖에 없어요.


일단 이 단계까지는 과학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모하게 그랬다가 시행착오를 했다고 일단 선의의 눈으로 봐 주도록 하지요.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비밀리에 돌아가는 주판알이니까요.

영구기관을 발명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원리나 구조에 대해서는 기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이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거나,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에 상당히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게 정말 웃겨요. 영구기관이 제작되어 시판된다고 가정을 해 보죠. 그러면 누가 이것을 뜯어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뜯으면 기계가 폭발해서 분해를 시도하는 사람을 죽인다든지 마법이라도 작동해서 그것을 못하게 막기라도 할까요?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하지요. 특허로 배타적인 권리를 향유하려면 비밀로 할 수 없고 원리나 구조를 비밀로 하더라도 상용화한 이상 그건 더 이상 비밀로 간주되지 않는데다 특허의 보호를 못 받으니 처음의 목적인 수익창출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원리나 구조에 함구하는 이유는 지극히 간단해요. 처음부터 없는 제품으로 눈먼 돈을 가로채기 위한 사기니까요. 그러니까 제품에 대해서는 말을 못하면서 돈에 대해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어요.


산업 중에는 만들어진 물품을 파는 산업이 있고 없는 물품을 파는 산업이 있어요.

그 중에서 현대의 신용사회에 특히 중요한 것은 없는 물품을 파는 산업이예요. 조선업같이 계약당시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발주자의 요구사항에 따라 수주자가 물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산업이 여기에 해당되어요. 영구기관 발명을 주장하는 자들은 늘 이렇게 경제적 가치가 어떻다고 구체적으로 주장하면서 투자자나 발주자들을 끌어모으고 이익이나 납품을 약속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그렇듯 그런 자칭 발명가들은 거액의 투자금을 챙기고 도주하고 속은 사람들은 돈을 떼이는 일밖에 일어나지 않아요.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높은 기술력을 지니고 있지만 자본력이 부족하여 도움이 필요한 진짜 발명가들이 피해를 입어요. 즉 영구기관의 성공을 장담하는 자들은 신용사회의 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게 분명해요.


영구기관은 만들어지지 않아요.

그러나 정작 다른 목적을 지닌 그들의 머리 속에서 주판알은 계속 구르고 있어요.

영구기관의 발명을 주장하는 자들이 이러한 사고방식을 모르고 그 목적을 추구한다면 로또를 구매하지도 않고 1등당첨을 노리는 망상 속에 빠진 것이고 알고 그런다면 그들은 비과학과 비양심을 교묘히 포장한 암적인 존재 그 자체로밖에 볼 수 없어요.


그리고 하나 더. 그들이 굴리는 주판알도 카르노 사이클의 예외일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