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데도 판교에서 열리는 소규모 인디 게임 전시회에 다녀왔다가, 몸살 비슷한 증상으로 바로 누운 뒤에 일어나서 쓰는 글입니다.
바로 아래 대왕고래님의 이력 관련 글(링크)을 보자 "드래곤 사쿠라"가 생각나서 읽어보던 차에, 요즘 뉴스에서 9월인가 10월부터인가 시작한다는 고교학점제와 비슷한 내용이 나오더군요.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교학점제에 대해서 설명드리려고 검색했는데, 이것도 갑자기 취소(정확히는 개선안 발표의 취소 및 연기)됐다고 합니다(조선일보). 유튜브에서 본 다른 뉴스에서는 내신 경쟁이 더더욱 심화되는데다, 한 번 손상을 입으면 다시 회복하기도 힘들다는 이유로 아예 자퇴까지 고려하거나 정말로 자퇴한 학생들의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문이과 통합도 말이 많았는데 고교학점제까지... 수능등급제 처음 경험해 본 세대로서 실험쥐 취급을 '또' 당하는 요즘 고등학생들이 참 불쌍해졌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드래곤 사쿠라"에서 관련 있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원문을 몰라 정발판을 따랐으나, 매끄럽게 읽을 수 있도록 일부 수정했습니다.)
(전략, 우리나라의 전공변경과 비슷한 도쿄대의 '진로변경' 제도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오사와)
오사와 : 그러니까, 이과 3부에 가더라도 어디를 졸업할지는 아직 모르는 거지.
미즈노 : 하지만 그러면 불안하지 않아, 오사와? 사회에 나갔을 때를 위해, 하고 싶은 걸 얼른 정하고 준비를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오사와 : 그래? 하지만 그걸 정하려면 판단 자료라고 할까, 정보가 필요하잖아?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사회에 대해 알려면 한계가 있는데, 부족한 정보만 가지고 결단을 내리다니… 난 좀 이해가 안 돼.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고 경험도 없어.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생각은 없어. 나는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정보를 모을 거야. '그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여러가지를 보고 듣고 관심을 가지면서 내가 몰두할 분야를 찾아낼 테니까, 그 때까지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그런 유예 기간을 주는 도쿄대야말로 나한테는 최고의 환경일 거야.
그러고 보니 저출산이 문제라니까 '졸업을 앞당겨서 사회인 수를 늘리면 되잖아?' 같은 소리가 나왔던 것도 기억나고... 진짜 엉망진창이네요. 서구권의 좋은 제도를 가져오는 건 좋아요. 하지만 그 실험 대상이 된 학생들의 시간은 대체 누가 보상해 준답니까? 향후 취업 우대권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그냥 네가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가 되니까, 상술한 것처럼 자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전 그 자퇴한 학생들을 응원하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유일하게 공평한 것이 시간이니만큼, 그 시간이라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니까요. 물론 안 그래도 학교 다니기 힘든데 더더욱 싫어졌다는 이유로 홧김에 탈퇴한 부류도 없지는 않겠지만, 어정쩡하게 고등학교(가능하다면 대학도)를 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자신의 눈으로 사회를 보고 느끼며 터득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라 봅니다.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단점이지만요.
p.s. 글을 쓰면서 로그인 풀림 방지용으로 창 하나를 더 열어두고 틈틈이 새로고침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포럼 전체가 빈 페이지로 바뀌어서 당황했네요. 글이 모조리 날아간 줄 알았지만 다행히 자동 저장 덕분에 살았습니다. 주소가 그대로 http였던 것을 보면, 아마 호스팅 회사의 점검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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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몇 화 뒤에는 고등학교에서의 동아리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이것이 오히려 고교학점제 같은 섣부른 헛소리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 생각난 김에 인용하겠습니다.
(전략, 사쿠라기가 야구부 감독에게 '예선 1회전부터 모든 시합을 전교생이 응원하러 갈 테니, 최소 2등까지는 해라'라며 격려한 후, 예체능까지 강화하진 못하겠지만 서클 활동은 활성화시킬 생각이라고 말한다)
사쿠라기 : 진학교화를 목표로 삼을 때, 입시 지도를 강화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단순한 발상은 착각이야. 그렇게 한 쪽에 치우친 공부를 하면, 학생들의 뇌가 좋은 뇌로 성장하지 않거든. 음악이나 장기를 잘 하는 학생이 공부를 했을 때 금방 성적이 올라가는 건 좋은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좋은 뇌'란 뭘까? 바로 '균형이 잘 잡힌 뇌'를 말해. 일부만 움직이는 뇌보다는 전체가 활발히 움직이는 뇌가 바람직하지. 그러려면 다양한 자극이 필요해. 스포츠로 몸을 움직이거나 음악이나 회화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식으로, '좋은 뇌'가 생긴 사람은 뇌가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흡수가 빠른 법이니까.
이후 미야무라 선생이 "부모들이라면 서클 활동보다 공부를 우선시하니까 양립시킬 수 없지 않을까"라며 걱정하자, 사쿠라기는 양립이라는 생각이 잘못됐다며 "자동차 바퀴처럼 동시에 잘하기보다, '죽마'처럼 서로 지탱하는 관계라고 설명해라"라고 조언하죠. 즉 아이들이 1~2학년 때 좋아서 서클 활동을 하면 '좋은 뇌'를 만들도록 열중하게 도와주고, 3학년이 됐을 때 그 '좋은 뇌'로 공부에 전념하라는 겁니다.
일본 학원물이 동아리 천국으로 묘사되는 것은 창작물이니까 현실하고는 상당한 괴리가 있겠지만, 그 누구도 헛소리 말라며 금지하지 않고 시청한다는 것은, 결국 그게 옳다는 반증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RISEN 프로젝트에서도 (배경이 미국이라는 점을 극복하면서) 최대한 살려보려고 하는데, 잘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