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전쟁의 종식 후 유럽 각국이 전후처리를 1814년 9월부터 1815년 6월까지 오스트리아의 재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Klemens von Metternich, 1773-1859) 주도로 수도 비엔나(Vienna/영어, Wien/독일어)에서 열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후에 비엔나회의(Congrès de Vienne)라고 불리는 외교사적인 대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분위기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당시 가장 매력저인 남성으로 칭송되던 오스트리아의 리뉴 후작 샤를 죠셉(Charles-Joseph Lamoral Francois Alexis de Ligne, 1735-1814)이 프랑스어로 남긴 말인, "회의는 춤추지만 나아가지 않는다(Le congrès danse beaucoup, mais il ne marche pas.)" 라는 것.
요즘의 정치상황을 보니 국내외 할것없이 회의는 계속 열리고만 있을 뿐 전혀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그나마 비엔나회의에서는 참여한 국가들간의 합의가 그런대로 이루어지기라도 했습니다만,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관세전쟁은 결론이 난 경우가 영국과 베트남밖에 없을 정도로 극소수이고, 국내에서의 장관후보자 청문회는 자료제출이나 증인출석 등이 사실상 없어져 이미 형해화되어 있는데 계속 공전하는 상태입니다. 비엔나회의에는 아름다운 회장 내에서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 사교댄스를 즐기는 고관대작 및 귀부인들이 있었습니다만 작금의 것들은 일부러 찾아서 볼 가치 따위가 없습니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뭐라고 평가할지는 모르겠는데다 저는 현재 프랑스어 작문능력이 없으니 리뉴 후작같은 명언도 못 남기겠습니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19세기의 비엔나회의는 적어도 춤추는 회의였는데 21세기의 것들은 대체 무엇이었냐는 물음은 누군가가 제기할 것이라고.
프랑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프랑스 발레 작품을 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
샤를-프랑수아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1818-1893)의 오페라 파우스트(Faust)에 나오는 발레장면 "발푸르기스의 밤(Nuit de Walpurgis)" 입니다. 영상은 1971년에 소련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녹화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