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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柔夜 2024.12.26 05:18:11

안녕하세요.


유야입니다. 오랜만에 안부 인사 드립니다.

작성했던 글을 돌아보니 제가 2013년? 2014년부터 여기에서 활동했더군요. 왕성하게는 아니지만, 종종 찾아뵈었던 걸 보면,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걸 보면 어쩌면 제게는 무언가 단순한 커뮤니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라는 사람의 족적 중 하나가 있는 곳 정도의 의미였다가, 신기하고 예의범절과 질서 그리고 규칙이 온존한, 현 인터넷 세계에서 찾기 힘든 장소라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다시 오게끔 되는 그런 공간이며, 또한 뭔가, 마치 명절때와 같이 귀성한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라는 느낌입니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사 년 간.

대학은 제 이상과 기대와는 다른 커리큘럼과 교수의 됨됨이에 질려 중퇴했고, 최종학력 고졸로서의 삶을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퀴어니스에 대해서는, 직장 외 공간과 직장 외 인간관계 대다수에 오픈한 오픈리 트랜스젠더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키 184에 중저음을 내며 올블랙 수트를 선호하는 여성도 있어야지"가 삶의 모토이자 미적 태도입니다. 추구미는 비록 피어싱을 많이 달고 오프숄더를 선호하며 단발에 스모키 화장을 하는 여성이고 싶었지만, 주어진 것이 욕심 그리고 이상과 다르더라도 제게 주어진 것을 제가 잘 부리면 그건 제 지향점보다 더더욱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저만의 고유한 것이 되리라 깨닫고 살고 있습니다. ☺️


이런저런 육체노동을 전전해오다가, 삶을 한 번 놓고 싶어 확실히 시도했지만 신이 결국 또 다시 저더러 생을 이을 것을 명령한 것만 같아 다시 일어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결정 끝에 올해 가을부터 경북의 어느 지역에서 쇳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을 서른이라는 나이에, 그리고 투박하고 무뚝뚝한 특성을 지닌 지역의, 현장직으로 몇십 년을 지내오신 분들 사이에서 여리고 예민하며 감성적인 사람인 제가 적응하기는 정말 쉽지 않으나, 그럼에도 버티고 노력하며 어쨌든 일원으로써 서서히 인정 받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서 삼사 년은 더 일하며, 제 인생이 서른인 지금에서야 꽃피기 시작했음을 알기에,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앞날의 시간을 벌기 위해 노력할 것 같습니다. 다만 여전히 과도한 소비와 사치로 자존감을 채우고 자기표현을 하고 있는지라, 그 점에서는 개선할 방법을 찾는 중입니다.

금속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옛부터 세상을 움직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욕심과 열망이 있었기에, 이번 국내에서 일어난 일은 저를 드디어 일어서게 했습니다. 아마도 다음 직업은 사회운동가나 적어도 그러한 글을 기고하는 사람이지 않을까 합니다.

소수자로서 타이틀이 이미 하나 있지만 다른 하나를 더 가시화하고 오픈리로 살고 있습니다. 저 자신이 자격은 되지 않는다 생각하지만, 구원을 바라고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언제나 옆에 있겠으며, 또한 모든 아픔과 눈물과 상처를 내가 짊어져줄 것이고, 제가 아는 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끔 지도하고 멘토링하는 사람이고자 싶다는 그런 성향으로 살아왔고 살고 있습니다. 졸업식을 세 번째 하고 있으며, 이제는 제가 타인에게 그러한 걸 해주는 역할로 사는 건 충분하고 족했으니, 제게 그러해줄 사람이 없어 그리 살아왔으니, 나도 이젠 슬슬 졸업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 하에 찾고 찾다가, 드디어 다른 사람의 지도와 예속 하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어떻게 느껴질지 몰라 상당히 에둘러 말했지만 그런 성향입니다.


올 한 해를 이리 보낸 것도 아니고, 올 여름, 무덥고 아지랑이가 후끈거리며 하늘 높이, 마치 이카루스처럼 팔을 뻗어올리며 갈구하고 닿기를 소원하는 것만 같던 팔 월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서른에야 꽃필 것만 같다고 막연히 느껴온 제 삶이 드디어 막 첫 울음을 뗀 것처럼 느껴져서, 지난 사 개월이 정말 생경하고 꿈만 같습니다.

곧 서른 하나가 되겠군요. 그 때의 저는 지금보다 얼마나 더 우아하고 기품과 위엄과 매력을 지니고, 얼마나 더 당당하고 솔직하며 옳음을 추구하고 선하고자 할 수 있으며, 그러한 생각을 몇 퍼센트나 실제로 이루어낼지, 예전이었다면 걱정했을 것을 지금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게임 해설을 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때 저는 참 가진 것 하나 없이 빈곤하고 그 빈곤은 막연하고 또 막연해서 타개할 수단을 아무리 강구해도 절대 찾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물론 지금 또한 온전히 타개하진 못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항암 삼 차를 지나 사 차에 접어들고 계시고, 저를 옥죄는, 집안의 빚은 아직도 크고 육중합니다. 지난 사 년의 시간 동안 제 인생에 있어 절대 지울 수 없는, 회한과 속죄의 낙인으로만 남아 저를 고행에 걷게 할, 그럼에도 겸허히, 결코 억울하다고 할 자격이 없는 일에 종사한 적도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시절의 꿈을 매일 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삶에서 저는 이리 느껴왔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내가 인복이 참 많아"

여태까지는 내가 뭐라고 그리들, 이라는 생각을 하며 침잠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러니까 나또한 그대들처럼 빛나고 찬란하리라, 하며 앞을 향해 나아갑니다. 다시금 붙잡고 기도하게 된 십자가와 같이. 이냐시오 데 로욜라라는 세례명을 받았던 유년 시절의 저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악수하며 화해한 것과 같이.


새벽 다섯 시 십육 분.

크리스마스는 제게 휴일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야간조 출근을 위해, 생활 패턴을 유지하려 애쓰며 밤을 새는 지금 새벽.

문득 이곳 생각이 나서, 하루 늦었지만 인사를 전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안온한 꿈자리, 행복한 잠자리 되시길.

柔夜였습니다. 종종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