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하다가 기분이 갑자기 우울해졌는데, 우울해진 기분을 날릴 겸 방향을 급선회해서 영화관에 들러 영화를 보았습니다.
고른 영화는 최근 주변에서 좋은 평을 많이 들은 '그래비티'였습니다.
영화에 대한 제 감상평은, '아름답고도, 잔혹한 우주'입니다.
보통 사람은 웅장한 자연 경관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주는 어떨까요?
이 영화는 그 광경을 우주에서 미아가 된 한 사람을 통해서 절실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대지와 공기에 보호받으며 삽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이 없는, 그래서 너무도 차갑고 잔인한 우주에서 너무도 힘없이 부딪히고 떠내려 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사람이 얼마나 작고 약한 존재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근데, 그 냉혹한 우주의 모습이 제게는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적용되는 물리법칙에 사람이 부대끼고, 수없이 날아다니는 파편이 생명을 위협하는 그 모습들에서
전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1시간 반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에서 전 한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을 느꼈습니다.
자세한 부분은 스포일러입니다만... 주인공이 보여주는 모습 등을 보면, 마치 '아기'와도 같이 연약했던 한 사람이 우주를 통해 의식의 심층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고, 그 결과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일련의 과정이, 숨막히는 음악과 빙빙 돌아가는 카메라 덕에 '마치 내가 같이 저 고난에 처한 것 같이' 묘사됩니다.
이 영화는 철저히 주인공과 그 주변만을 비춰줍니다. 그래서 관객은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고, 주인공과 함께 숨이 가빠지며 함께 환희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기에 전 이 영화를 보며 답답한 심정을 어느 정도 날릴 수 있었습니다.
퇴근길의 작은 일탈이, 제게 멋진 경험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p.s. 혹 이 영화를 아직 안 보셨고 앞으로 볼 계획이 있으시다면, 반드시 3D로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우주의 막막함이 전해집니다.
p.s.2 영화 끝나도 1분 정도 자리에 앉아서 엔딩 크레딧을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처음 파편이 충돌할 때 그 장면에서 나온 음악이 다시 재생됩니다. 그리고 음악만 들어도 압도되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