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찌저찌 툴툴거리면서 번역을 해온 것도 이제 좀 끝이 보입니다. 정확히는 지난주인가 지지난주쯤에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예전부터 질질 끌었던 게 하나 더 있었더라고요. 특히나 질문 좀 몰아서 했더니 '너희(번역가)가 스스로도 확인해보고 알 수 있는 내용이잖아' 정도로 불친절해서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했던 것 같습니다.
게임이 프레임이 뚝뚝 끊기고 어려워서 치트나 뭣 좀 보내달라고 했더니 공략 영상을 올려줬는데, 하필 러시아 서버라 다운로드하는 게 느린데다 뚝뚝 끊기고, 자기들도 중간에 여러 번 죽는 게 고스란히 녹화됐더군요. PM한테 얘기하니 '걔네도 다른 게임 여러 개를 동시에 붙들고 있고 이건 우선순위가 낮아서 그런다'는데, 말만 들으면 개발자가 아니라 유통사 같거든요. 무슨 일을 이렇게 하는 건지 참...
다행인 건 몇천 단어 밖에 안 남았습니다. 하루에 최소 분량인 1500단어씩 하면 금방입니다만 요즘 또 등에 힘이 없어진 느낌이고 자기들이 우선순위가 낮다고 얘기했으니 조금만 더 느긋하게 할 생각입니다.
사실 4월 말인가에 또 작업이 하나 있긴 합니다. 이것도 9천 단어인가 하는데 21일부터 시작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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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번역을 끝내고 정신적 여유가 생기니까 다시 소설을 연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가장 최신 회차를 복기해보니 약간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크게 보자면
(1) 레스터에게 제안한 일이 '탐정' 같지 않다.
(2) 존이 생각보다 꽤나 냉소적이다.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씩 얘기하자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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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레스터에게 제안한 일이 '탐정' 같지 않다.
현실의 탐정은 그렇다쳐도 창작물의 탐정이 고양이 찾기나 유실물(가끔 사람) 수색 같은 별 것 아닌 일에서 사건이 커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자기가 뭔가 한다기보다는 기존의 공권력을 도와주는 정도에 그친다는 게 약간 전개에 지장이 됩니다. 그리고 참고할 만한 탐정물이 하나같이 다르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특히 정석적인 탐정물은 엘러리 퀸 시리즈처럼 독자들이 풀 수 있는 트릭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제 머리로는 절대 무리거든요. 물론 프레데릭 포사이스(자칼의 날, 어벤저 등의 작가)나 미드 "블랙리스트"처럼 뒷세계 전문 탐정 같은 작품도 있습니다만 이 정도면 탐정이 아니라 '해결사'나 '픽서'로 불려야 맞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일단 생각하고 있는 해결책은 이 정도입니다.
(1) 해당 서술에서 '탐정'을 '해결사'로 바꾼다.
이 경우 1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긴 하지만, 목적을 확실히 정해둬서 이후 전개가 편해질 듯합니다. 범죄 이야기로 한정될 것 같아 그렇지만요.
(2) '탐정'으로 유지하고 에피소드를 추린다.
정석(?)적인 전개에 맞게 '별 것 아닌 일에서 거대한 사건으로 진화'한다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다만 일상적인 에피소드는 거의 한계가 있다 보니 얼마나 더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직접적 모델로 잡은 작품들이 셜록 홈즈 시리즈를 제외하면 시티헌터&엔젤하트나 가가탐정사무소 등인 것을 고려해보면, '탐정'보다는 '해결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넓고 표현만 다를 뿐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즉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것을 두고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죠.
차라리 존이 "너 나랑 일 같이 하나 하자"라고 하고, 레스터가 "탐정이나 해결사 같은 거냐"라고 되물었을 때 "대충 비슷하다"라고 넘기는 게 더 깔끔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꼭 이렇게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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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존이 생각보다 꽤나 냉소적이다.
일단 존의 모델은 (얼마나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셜록 홈즈입니다. 자기만의 페이스가 강하다는 것, 필요한 정보 외에는 개무시한다는 것, 호불호가 확실하다는 것 등등. 물론 이런 특징들은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 '추진력이 강하다', '선택과 집중을 잘 한다', '자기 사람에게는 친절하다' 정도로 좋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셜로키언이어서 홈즈는 꿰고 있으니 홈즈 캐릭터를 빌려오는 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예전에 연재한 걸 이제 와서 보니, 불필요하게 냉소적이거나 차디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제의 부분인 3-3의 일부를 가져오면 이렇습니다.
"역시 동양인, 머리 잘 돌아가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그래도 되거든. 그래서 신뢰라는 게 중요한 거야. 나야 예전에 이것저것 해준 게 많아서 좀 쉬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준다고. 하지만 초짜들이 그랬다간 국물도 없지. 아까 좋다고 가방 챙겨간 두 녀석들처럼."
"그 녀석들이 왜?'
"내가 '목숨 값'이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더만."
"설마 그게..."
레스터가 안색이 하얘져서 돌아보자 존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내가 걔네들한테 돈을 몰아줘서 마피아 놈들한테 분풀이 대상으로 던져줬다는 건 아냐. 아까도 말했듯이 털어서 의뢰를 완수하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돈은 의미가 없었어. 그래서 몰아준거야. 하지만 걔네들 앞에서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걔네들 솜씨가 너무 개판이더라고."
"그러면 그 '목숨 값'이라는 건...?"
"뭐, 그 돈도 못 쓰고 죽기 전에 알아서 몸 사려라. 그런 뜻이지. 어쨌든 나는 충분히 힌트를 줬어. 이제 그 놈들이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
"만약에 살면?"
"살면 사는 거지 뭐, 별 다를 게 있나. 어차피 나는 두 번 다시 안 쓸 거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즐겁거나 가벼운 분위기를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죠. 스스로를 희생해서 웃기거나, 남을 깎아내리거나. 참고로 홈즈의 경우 후자를 자주 사용합니다. 물론 홈즈는 장난으로 놀릴 뿐이지 작정하고 모욕하진 않습니다. 홈즈 성격상 자기가 발휘한 능력을 보고 감탄할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걸 못 참아서 가끔가다 왓슨이나 의뢰인을, 심지어 범인까지 놀리는 거고요.
물론 아무리 제가 셜로키언이고 존의 모델이 홈즈라지만 그렇게까지 홈즈 시리즈를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레스터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치고는 성격이 다소 모난 것 같지 않나요? 물론 마저 가져오지 않아서 그렇지, 다른 회차를 보면 레스터를 놀리는 부분도 들어 있습니다. 즉 모두한테 저러는 건 아니고 저 둘이 워낙 실력이 부족해서 고생했다는 의미로, '함께해서 더러웠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자'는 의미삼아 저랬다고 보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걸 감안해도 존과 레스터가 공동 주인공인 이상 뒷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존이 주로 앞장서며 레스터를 끌고 갈 것인데, 그런 존의 성격이 다가가기 힘들어서야 읽는 재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탐정이나 해결사는 장르에 불과합니다. 즉 중요한 것은 '분위기'인데, 치열한 액션 활극일지 적당히 가벼운 버디무비일지는 아직도 애매하다는 거죠. 사실 전자도 끌리지만 엔딩은 꼭 후자로 맺고 싶거든요. 그렇다고 작정하고 망가지는 코미디로 갈 생각도 없지만요.
해당 회차의 경우 주접은 저 못난이 둘이 떨었고, 존과 레스터는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입장이니 괜히 무겁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개상으로도 액션이나 범죄적인 요소는 앞에서 다 마무리가 되었다보니, 좀 더 차분하거나 평화롭게 진행해도 되겠죠. 3-3은 레스터가 어디로 가는 건지 몰라서 노심초사하다 3-4에서 그 목적지와 행동이 밝혀지고 나서야 긴장과 의심이 탁 풀리는 걸 기대했는데, 3-3이 너무 무거웠는지 3-4가 별로 안 가벼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히 성에 안 차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직은 번역이 남아 있어서 당장 고치거나 새로 연재하는 건 힘들겠지만, 지나치게 심각한 부분들은 좀 가볍게 고쳐 볼까 합니다. 에피소드 3의 두 못난이를 이전에는 질색하며 내쫓는 느낌이라면, 새로 고치는 건 가능하다면 타일러서 내보내는 느낌? 어차피 두 번 다시 안 만날 거니까 무슨 의미가 있냐 싶지만... 창작물에서까지 긴장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아니면 2-1과 마찬가지로, 저대로도 좋은데 괜히 제가 걱정하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이건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