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물냉면 하나요.”
7월의 어느 토요일, 종로 XX동에 있는 평양냉면 식당 ‘상춘면옥’. 무더운 여름에 직장인들이 입을 만한 흰색 반팔 셔츠에다가 회색 정장 바지를 걸쳐 입은, 3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남자가 2인용 테이블 앞에 혼자 앉아서, 손을 들고 식사를 주문했다. 그로부터 약 5분 뒤, 테이블 위에 냉면 한 그릇이 차려지고, 그는 평양냉면 한 그릇을 10분도 안 되는 시간만에 다 비웠다. 누군가는 이 맛을 심심하고 별로 그렇게 뇌리에 남는 맛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여름 요리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는 여름에 먹는 음식 하면 바닷가에서 먹는 조개구이라든가 깊은 산골의 계곡에서 먹는 매운탕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년의 그 지옥같은 경험이 모든 것을 바꿔놨다.
충청남도 어딘가에 있는 바닷가의 조개구이로 유명한 맛집을 가려고 일부러 서울에서 차까지 타면서 가보려고 했는데, 웬걸, 도로 위에서 꼼짝없이 4시간을 보내 버린 게 아닌가. 거기에다가 차의 에어컨도 고장나고, 하필이면 그날 35도가 넘는 폭염 때문에, 하마터면 조개구이를 먹기도 전에 저세상으로 가 버릴 뻔했다.
그 경험 이후, 그는 굳이 여름에 멀리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신 직장 주변에 있는 맛집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멀리 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다가 찾은 상춘면옥은, 정말이지 인생 맛집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친구들이나 지인들까지 데려와서 이곳을 소개해줄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혼자 와서 먹는 것도 그에게는 즐거운 시간이다.
“어, 손님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아, 그런 일이 있어서요.”
그러고서 또 한 가닥 면을 입에 넣고 그릇을 들어 육수를 마신다. 역시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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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여름 음식'을 주제로 2시간 만에 써 봤습니다. 글쓰기 모임에 제출할 목적으로 써 본 건데, 짧지만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어서 여기에도 한번 올려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