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판 시즌 10의 포스터)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제멋대로가 되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는 고고한 행위.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판의 오프닝 나레이션)
드라마는 관심없다는 철벽수비를 기어이 뚫고 들어온 굴지의 어태커, TV도쿄에서 2012년부터 절찬리에 방영중인 심야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입니다. 만화가 "쿠스미 마사유키(久住昌之)"가 스토리, 만화가 "타니구치 지로(谷口ジロ?)"가 작화를 담당하여 1994년부터 1996년에 걸쳐 연재한 동명의 만화 "고독한 미식가(孤?のグルメ, 코도쿠노 구루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입니다.
플롯 자체는 지극히 단순하여 인테리어 소품이나 잡화를 원하는 고객에게 판매처를 알선해주는 수입 잡화상을 직업으로 하는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井之頭 五?)"가 각지방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가게에서 다양한 식사를 즐기는 것이 전부인 매우 심플한 전개. 사실 프롤로그를 담당하는 이 업무 관련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이야기 진행을 위한 에피타이저에 가깝고 만화나 드라마판이나 핵심은 바로 요리.?
설정상 드라마판은 만화판의 약 20년 뒤 미래인 지금 현재. 만화판에서 30대의 청년이었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드라마판에서는 좀 더 사회인의 관록과 경험을 갖춘 4-50대의 중년의 모습(배우는 이 드라마로 일약 스타가 된 마츠시게 유타카(松重豊).)으로 등장합니다. 드라마의 캐릭터는 맛있게 많이 먹는 중년 아저씨의 느낌. 전통적인 일식 정식부터 생소한 외국의 요리, 중년 아저씨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요리나 아저씨와는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디저트 류 까지. 말 그대로 방문한 가게에서 파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먹는 타입이죠. 배우가 소식가에 애주가인 것과 반대로 드라마의 고로는 술을 전혀 못해 늘 우롱차를 주문하고, 척봐도 인분수로 3인분은 훌쩍 넘을 요리들을 우걱우걱 먹어치우는 대식가 캐릭터로 대조를 이루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
그리고 이 작품 최대의 포인트는 바로 고로가 음식을 먹으면서 생각하는 방백입니다. 여타의 요리 배틀 장르의 작품들처럼 과장된 리액션이나 기괴할 정도의 맛 표현 같은 것은 일절 없이, 그저 중년 아저씨가 담담하게 밥을 먹을 뿐인 내용이지만 가령 일본식 정식이면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꾸밈없는 일본의 맛이야", 생소한 외국의 요리라면 "본적도 없는 요리지만 무척이나 맛있어 보인다." "음 이것이 ○○의 맛인가. 생각보다 괜찮은걸." 등. 요리의 종류에 따라서도 고기 요리라면 "지금의 나는 인간 화력발전소다!", 모듬 덮밥 처럼 재료의 가짓수가 다양한 요리라면 "뭐부터 먹을지 고민되는구만", 등등. 알기 쉽고 간단하면서도 고로가 지금 어떤 기분으로 음식을 먹으며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를 그대로 전달하는 맛 표현이 이 작품의 백미죠.
주문한 요리는 몇 그릇이 되었건 몇 종류가 되었건 전부 깨끗하게 다 먹고, 먹는 도중에도 종종 다른 손님이 주문한 요리를 보고 같은 걸로 주문해 추가로 먹거나 먹고싶은 요리를 주문해 먹는 등 굉장한 대식가로 묘사되죠. 작중에서도 한번은 대놓고 주문받는 점원이 "더 주문하세요?!"라고 놀라는 장면도 있을 정도죠.
저예산 심야 드라마로 시작했다보니 초창기 시즌에 등장한 가게들은 스탭들의 단골 가게였다고 하며, 드라마가 유명해진 지금은 가게들도 흔쾌히 촬영에 응해준다고 하고, 또 촬영하기 전에 먼저 가게에 몇번 방문해서 다양한 요리를 먹어보고 이를 에피소드에 투입하는 식으로 제작한다는듯 합니다. 한편, 드라마판은 매번 에피소드가 끝나면 등장한 가게를 원작가 쿠스미 마사유키가 직접 방문하는 "불쑥 쿠스미(ふらっと Qusumi)"라는 코너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술을 못하던 고로 대신 원작자 쿠스미가 작중에 나온 요리와 함께 다양한 이름으로 위장된 술을 마시는 것도 깨알같은 재미.
드라마코리아 공식 채널을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전 시즌을 돌려가며 방영중이다보니 한번 감상해보시는걸 추천드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