恥の多い生涯を送ってきました。
自分には、人間の生活というものが、見?つかないのです。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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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자무, "인간실격"의 첫 문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아 티타임에 작성할까 했는데, 같이 논할 주제가 많은 것 같아서 결국 여기에 작성합니다.)
지금은 하도 TV를 안 봐서 어떤지 모르겠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문학 열풍이 굉장했습니다. 특히나 "취업 안 되는 문사철~♬"이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던 사학과 출신(정확히는 인문학부(사학) -> 사학과로 통폐합&흡수)으로서 이런 열풍은 정말 큰 희망(?)을 줬습니다. 솔직히 옛날에 읽었던 서양 문화를 소개하는 책자들에서 봤던 것처럼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인간다움이라는 게 귀하게 여겨지는가!'하고 찬탄했던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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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째서인지(혹은 당연하게도) 인문학 열풍이라기엔 분위기가 시원찮았습니다. 분명히 인문학이 트렌드가 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점에 인문학 서적이 그득하게 쌓였고, 극소수의 스타 강사들이 곳곳에서 강연을 하고 다녔으며, 기업계에서도 눈독을 들인다던 인문학은 그냥 구색 맞추기로 전락했죠. 게다가 셋 다 엄청난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인문학 서적 판매의 경우, 그나마 사람들이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창구 중 하나가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인문학'이라는 깃발 아래에 온갖 어중이떠중이 작가들이 모여들었고, 이 상황에서 무엇이 인문학이고 아닌지 분류하는 사람도 없다보니 인문학이 전혀 아닌 것들이 인문학으로 둔갑하여 팔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자기개발서와 인문학을 합친 물건도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만 후술하겠지만 이건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정도의 차이일 뿐)
극소수 스타 강사들의 문제는 더 심했습니다. 인문학 서적이야 시간 날 때 들여다보거나 하는 식으로 작가와의 거리가 제법 있는 편입니다. 하지만 강연은 방청객들이 강사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듣는 만큼 그 거리가 훨씬 가깝습니다. 그리고 강사의 언변이 얼마나 화려한지에 따라 더더욱 몰입할 수 있죠. 선을 잘못 넘으면 괴벨스마냥 선동이 되지만 말입니다. 특히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모 강연자의 경우 꾸짖는 듯한 말투가 꽤 인상적이었는데, 이쯤 되면 종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전보다 설교자를 더 숭상하는 그 쪽 인간들처럼 말이죠. 텔레비전에 나온 '사짜'를 알아보는 법(다음 기고글)에서는 강사의 학력&학력위조를 중심으로 삼긴 했지만 이 역시 인문학 그 자체보다는 강사가 강연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기업계의 인문학은 더 참담했어요. 사실 합리성을 중시하는 기업계에서 인문학은 꽤나 어색하고 설 자리가 애매하긴 합니다. 그래서 기업계에서 추구한 인문학은 '어떻게 해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하는 마케팅적인 측면이 강했지, 정말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의문이나 인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정말로 인간이 마음을 사로잡는 전략을 만드는 법을 연구하기보단, 그냥 '저희 회사는 인문학을 활용합니다' 같은 홍보에 그친 경우가 대다수였죠. 저 역시 이런 측면에 이용(?)당한 바 있고요. 뭐 필요하다고 해서 응한 것이라 별 상관은 없지만, 말로는 인문학을 중시한다면서 행동으로는 인문학을 천대하는 부조리만큼은 꽤나 불쾌했네요. 그냥 아무 말도 안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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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저는 게임번역가라서 인문학과 관계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쓴 계기도 아래에 시어하트님이 쓰신 586의 집착에 관한 글('독서하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을 읽으면서 '낭만적 민족주의'에 대해 생각하고 댓글을 달기 위해 도올 김용옥의 과거 중국 공산당에 대한 우호적 해석과 그에 경악하는 조승연의 대비를 인용하려던 차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였던 조승연도 '사실 대중을 기만하는 인문학 장사꾼이 아니냐'란 비판을 접해서였습니다(위의 다음 기고글 참고).
애초에 인문학의 특징이 옳다고 생각하는 당대의 이론이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이긴 하지만, 그 비판을 읽고 잠깐 조승연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하려다 갑자기 "네가 뭐가 잘났는데?"라는 의문이 든 것이죠. 그리고 '너도 인문학 좀 배웠다는 주제에 인문학에 대해 뭐 제대로 아는 것도 없잖아? 네가 진짜 인문학을 알기는 하냐?'라는 생각까지 가지가 뻗쳤습니다. 원체 부정적인 생각을 쉽게 하는 성격이라 "그래도 주제파악을 잘하는 것이 인문학의 가장 큰 장점이다."라는 자조 섞인 결론으로 마무리짓긴 했지만, 한편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이 취급받는 처지를 생각해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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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끝내려다 문득 새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문학을 저렇게 떠들썩하게 설교하는 것도 인문학으로서 올바른가?" 제가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거나 그 밖의 독서에서 이런저런 철학이나 몇몇 사상을 수박 겉핥기로나마 접했습니다만, 대부분의 공통점은 '잘난 척하지 마라'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종교도 마찬가지더군요.) 그런데 위에서 제가 그런 모 스타 강사에 대해 "종교인"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고,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잘난 듯이 설법하며 자만하는 것이 일단 올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물론 학자라면 자신의 철학이나 사상을 내놓아서 입증할 필요와 책임이 있기는 합니다. 실제로 학계나 몇몇 분야의 위인들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더라도, 심지어 훗날에는 틀렸음이 밝혀지더라도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며 주장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런 인문학 강사들을 보면 스스로 어떤 주장을 정립하고 증명한다기보다는, 이미 존재했던 과거의 지식들을 세상 흐름에 맞춰서 소개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좋게 말하면 큐레이터고, 나쁘게 말하면 약장수죠. 특히 이건 지식 컨텐츠라는 이름으로 3분 요약이니 뭐니 하면서 단편적인 정보만을 제공하여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게 막아버린 유튜버들과도 통하는 부분입니다.
뭐 어지간한 사상은 이미 과거에 다 나와 있다보니 현대인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는 합니다. (인간을 창조하는 것과 비슷한 인공지능 제작은 논외로 치겠지만요.)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것도 아닌 지식을 자기 것마냥, 그것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팔아제끼는 만행은 선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라면 제대로 된(?) 인문학 컨텐츠를 만들어서 팔아먹을 자신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애초에 돈 버는 재주가 별로 없다보니, 차라리 개인 수양으로 만족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저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세상을 바꾸는 성인이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을 바꿀 만한 이론을 만들 수 있는 학자도 아니며, 지금까지 비판했던 지식 장사치는 더더욱 아니니까요. 설령 저에게 역량이 있다고 한들, 주위 사람들에게 진심어리고 도움이 되는 충고 몇 마디를 건네는 것 정도가 오만을 부리지 않을 수 있는 한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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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작업이 끝나면 지금 책장에 있는 인문학 서적들을 날 잡고 읽어봐야겠다'고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대규모 작업이 끝나질 않아서 도무지 학구적 즐거움을 얻을 수가 없네요. 계속 이런 상태이다 보니 포럼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도 왠지 요즘 말로 아무 말 대잔치 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집니다.
오늘(12월 30일)은 2022년의 마지막 바로 전 날입니다. 이틀 뒤면 2023년이 시작될테고 그 때는 새로운 일들이 또 벌어지겠죠. 성남에 올라온 지는 3년인지 4년인지가 됩니다. 인문학을 떠나서 저 자신은 올라오기 이전에 비해, 올라온 직후에 비해 나아졌을까요? 나아졌기를 바랍니다. 인문학에서 발전하지 않는 사람만큼 쓸모 없는 부류도 없으니까요.
만약을 위해 포럼 분들의 모든 분들께 인사를 올려두겠습니다.
늦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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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날개"의 마지막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