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에, 제목 그대로예요. 싫어도 각자도생(各自図生)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특히 주한미군이 고고도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로 배치했던 종말단계 고고도 지역방어미사일, 약칭 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missile, THAAD)를 반출하여 중동으로 보낸다든지 하는 것도 알려진데다 오늘은 노란봉투법으로 약칭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시행 첫날이기도 하니 국내외 상황이 여러모로 복잡해져 있어요.
어차피 사드는 미군의 자산이니 운용은 전적으로 미군의 몫. 게다가 이란이 마구잡이로 탄도미사일 및 자폭드론을 쏴대며 주변국들을 타격중이니까 급한 상황을 해결하려면 그래야겠죠. 북한이 우리나라에 대해 온갖 투발수단 등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 만일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우리나라가 스스로 방어해애 할 일이예요. 그렇게 금과옥조(金科玉条)로 여기던 자주국방(自主国防)이 이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고, 이 상황에서 누구 탓을 해봤자 소득도 없어요.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자주국방을 환영하는 목소리는 과문(寡聞)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들리지 않네요.
노란봉투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노사관계에서 사용자가 불리해졌다는 지적이 있긴 한데, 사실 사용자가 반드시 불리하지만도 않아요. 극단적인 가정이긴 한데, 사용자가 현금 보유가 충분한 동시에 사업지속의 의지를 상실한 경우라면 노사관계는 사용자의 결심에 달려 있어요. 노사관계의 전제가 사업장의 존재인데, 그게 통채로 없어진다면 그 뒤를 논할 필요는 없을 듯해요. 즉, 그냥 현금을 챙겨 직장폐쇄 후 해외로 야반도주하는 사용자가 나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그 경우의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임이 명백해요. 그리고 오래전의 실제사례도 알고 있어요.
이제 국가 단위로도, 사용자는 사용자대로,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각자도생.
국제관계에서도 국내의 사회체계에서도 그렇게 규정되었어요. 이런 사회는 겪어봐도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유명한 발언 하나로 끝맺을께요.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