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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끝과 시작 1 - 모든 가치관은 뒤집혔다

SiteOwner 2013.07.14 20:08:52

안녕하십니까. 사이트오너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전반에 걸친 대학생활로 청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그 때의 대학가, 사회기풍, 유행 등을 돌아보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지만 뇌리에는 남아 있는 그 세기의 끝과 시작의 역사를 이 자리를 통해 돌아보고자 합니다.

회원 여러분들에게 이 기획특집이 어떻게 비춰질지는 모르겠지만, 대전환기였던 그 시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는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990년대 후반의 어느 해에, 저는 고향을 떠나서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청운의 꿈을 품고 진학한 저의 눈에 비친 대학 내의 풍경에서 저는 이 한 마디를 떠올렸습니다.


"모든 가치관은 뒤집혔다"


대학가 내에서는 학생들은 무단횡단을 어떤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동차들이 수십대가 달려오든 말든간에 그냥 길을 잽싸게 건너면 되었고, 횡단보도에만은 유독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대학 구내의 쓰레기통 주변은 유독 더러웠습니다.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여 있고, 그리고 근처에 그냥 쓰레기를 대충 던져놓으면 모든 책임은 거기에서 끝납니다.


캠퍼스의 어느 공간이든 소음공해는 상식이었습니다.

어디선가는 풍물패의 타악기 연습 소리, 그리고 다른 어디선가는 시위에서 잘 들릴만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고, 근현대사의 사건이 있는 날을 전후해서는 도서관 앞에 대형 무대장치를 해 놓고 연설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가 밤낮을 메웠습니다.


화장실 내에는 더러운 낙서가 있었습니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곳에서 발견된 화장실 낙서는, 어떤 여학생과 성관계를 했는데 몸매가 형편없어서 짜증난다는 욕설과 추잡한 표현 등이 난무하는 것이었습니다.


학문의 기준은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 그리고 김일성이었습니다.

학문의 자유와 다양성은 이들에의 의심없는 찬양을 의미했고, 대학은 모든 사상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 뒤에 편리하게 숨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것에의 의문은 사문난적, 반지성적 행태 등으로 매도당했습니다. 또한 애국의 다른 방법을 제도권의 수구냉전논리로 욕해서는 안된다는 비난도 이어졌습니다.


지역감정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광주는 혁명의 성지, 대구는 반역의 고장이라는 폭력적인 담론에 의심을 제기하면 그는 자동으로 신군부 옹호자가 됩니다.


민주와 진보의 뜻은 달랐습니다.

민주의 이름으로는 학생회 선거결과를 조작해도, 교내에서 방화, 강도, 살인 등을 저질러도 모든 것이 정당화되었습니다.

진보의 가치는 가장 반문명적인 행태를 옹호하더라도 제도권을 적대할 수만 있으면 좋은 가치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였습니다.

정치 담론이 있으면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 세운 친미 반동국가이고, 절대 나타나서는 안 될 체제라는 전제가 기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완의 혁명인 4.19와 5.18을 이어서 계급혁명을 성공시키고, 외세와 완전히 독립된 인민공화국을 건설하여야 한다고 외쳐야 지성인 대접을 듣고 애국하는 방법이 달랐다는 칭송이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동생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세기말의 대혼란을 겪고 난 대학가에서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과거의 유산이 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동생의 말은 저의 그 예측을 틀렸다고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김정일 분향소 설치사건을 접하고 나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세기의 끝과 시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