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가사가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입니다만, 이상하게도 이렇게 틀리게 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산봉우리에 해가 뜨고 해가 질 적에" 로 부르고, 멜로디가 한 박자 늘어집니다. 그것도 "해가 질 적에" 부분의 멜로디에 거의 동기화되듯이.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현상,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것의 원인을 인간의 심리에서 찾습니다.
즉, 인간은 대칭을 좋아하고, 그래서 원래의 정보를 내용은 물론이고 형식조차 대칭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원래의 정보에서 짝을 이루는 것은 "해 뜨고" 와 "해가 질 적에" 입니다. 그런데 두 정보의 통사구조가 다른데, 후자에서 글자를 줄이자니 안 맞으니까 전자에 한 글자가 추가되어 "해가 뜨고" 로 달라집니다.
이 군가를 이렇게 잘 틀리는 이유가 이런 대칭화에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의외로 잘 풀리는 사회현상 담론이 있습니다.
바로 양비론적 사고방식입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 분쟁을 제기한 쪽에 맞서 싸우게 되면 흔히 주변에서 들리는 말이 "저놈과 똑같은 놈이 되니 안 싸우고 말지" 라는 것이라든지, 강력범죄가 일어난 경우 피해자에게도 원인이 있다고 섣불리 말하는 심리라든지,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이성인 경우에 치정살인으로 몰고 가거나 이성혐오로 속단해 버리는 것. 이것도 역시 대칭화 경향으로 간단히 설명됩니다.
학자들이라고 예외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특히 냉전기에 대한 연구에 이런 논리가 횡행했습니다.
6.25 전쟁이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었고 단지 남북에는 각각의 강대국의 구미에 맞는 독재정권이 세워졌다는 구조주의적 담론이라든지, 미국식의 자유진영도 소련식의 공산진영도 아닌 제3의 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든지, 세계 속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구조를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로 이해하는 종속이론의 풍미 등이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그렇게 구조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담론에서는 독자적인 행위자가 발생할 수 없는데, 실제로는 침략자도 혁명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담론을 인정하자니 독자적인 행위자가 부정되고, 그들을 인정하면 담론 속에 갖히고...
대칭화 심리가 인류의 추론능력을 향상시켜 온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만, 이런 폐해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칭화 심리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작게는 정보의 왜곡없는 수용에, 크게는 보다 합리적인 사고의 발전에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