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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M보다 더 나간 ODM, 정말 괜찮을까

마드리갈 2019.10.28 21:08:38
일단, 제목에 나온 두 약어부터 해설할께요.
OEM은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의 약칭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으로, ODM은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의 약칭으로, 주문자개발생산으로 번역되어요.
두 개념의 차이는 이런 것.
OEM은 일단 개발과 설계는 자사에서 담당하되, 제조는 타사에 외주로 위탁하는 형태인 아웃소싱(Outsourcing)으로 해결하는 방법. 기본적으로 ODM 또한 아웃소싱이지만, 이것은 아예 개발, 설계조차도 외주에 맡기고, 자사는 브랜드만 붙여서 판매하는 것이죠. 이렇게 ODM 방식으로 공급되는 물품은 식료품이나 컴퓨터 주변기기, 소모품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세계적인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전자 또한 물량 상당부분을 이렇게 ODM 방식으로 제조판매하기로 결정하면서 이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어요([단독] 삼성폰 6000만대, 중국에 생산 넘긴다, 2019년 10월 28일 조선닷컴 기사).

이렇게 되면, 일단 브랜드는 SAMSUNG인데 딱 그것뿐인 스마트폰이 탄생하게 되어요.


조금 더 깊게 보면, 문제가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것이 많이 드러나게 되어요.

몇 가지 쟁점을 뽑아보죠.


첫째, 국내의 부품산업계의 생태계가 크게 위협받는다.

둘째, 서비스채널의 복잡화는 피할 수 없다.

셋째, ODM의 전제가 되는 브랜드파워의 약화에의 대책이 없다.

넷째, 실패사례가 꽤 많다.


이미 기사에 나온 대로, 국내 부품업체들은 생존의 기로에 섰기에 초비상이 걸렸어요.

삼성전자가 중국의 제조업체에 ODM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받기로 했는데, 그 위탁업체들이 한국기업의 부품을 써 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요. 게다가 중국 광동성 등의 전자산업단지는 대부분의 기자재를 시장내에서 조달할 수 있을만큼 고도화된 생태계가 작동중인데, 부품 자체의 단가는 물론 재고확보, 물류, 기존의 거래선 등 여러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ODM 방식은 제조사에 전권이 있는 터라 한국기업에 유리한 상황은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되거든요.

여기서 한가지 씁쓸한 사실 하나를 짚고 넘어갈께요.

올해 7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제제재를 필두로 소재부품산업 육성을 통한 국산화의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그런데 세계 유수의 제조업기업이자 국내기업으로서는 최대 규모를 구가하는 삼성전자가 이렇게 국내기업의 부품에의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간다면 과연 국내 부품업체들의 생태계는 어떻게 될까요? 물론 이론적으로야 삼성전자를 대체할 수 있을만큼 해당업계의 경쟁사가 그 물량을 흡수한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죠. 그런데, 문제는 그 경쟁사들이 삼성전자만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러니 국내 부품산업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불가피해져요.


서비스채널의 복잡화도 피할 수 없는데, 특히 이 점은 서비스채널을 별개의 법인으로 운영중인 기업의 경우 더욱 큰 문제가 되어요.

삼성전자의 예를 들어보죠.

삼성전자는 자사가 직접 서비스채널을 운영하지 않고 삼성전자와 별개의 법인인 삼성전자서비스를 통해 외주 방식으로 자사 제품의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 방식은 현행 방식으로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위의 ODM 방식이 도입될 경우에는, 그렇게 공급된 제품의 유지보수에서 삼성전자서비스가 제3자가 되는 문제가 발생해요.


로마법상의 원칙 중에 이런 것이 있어요. 라틴어 원문을 소개해 드리죠.

Res inter alios acta, aliis nec nocet produst.

두 당사자간의 계약으로 제3자는 이득도 손해도 안 본다는 것인데, 이 원칙은 각종 사법상의 계약이든, 국제조약 등의 각종 공법적인 사안에서든 널리 인정되고 있어요. 삼성전자서비스는 단지 삼성전자의 제품의 서비스채널로 작용하고 있을 따름, ODM 계약에 대해서는 삼성전자와 납품업체가 계약의 당사자일 뿐 삼성전자서비스는 어디까지나 이 건에서는 제3자에 불과하고, 따라서 납품업체가 삼성전자서비스에 반드시 협력해야 할 의무가 도출되지는 않아요. 물론 납품업체가 선의에 투철해서 해당 제품군의 유지보수에 필요한 기술정보를 무상으로 제공해 준다는 최선의 시나리오가 성립한다면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이걸 바라느니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대해야죠. 그렇다면, 완전히 다른 계통의 제품군이 한 브랜드로 존속할 때의 서비스채널의 복잡성은 결국 그 채널의 부담으로 귀결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네요.


ODM은 "브랜드 파워" 를 전제하는 것. 이것은 금, 은, 팔라듐, 보석 등의 자체로 높은 가치를 지닌 유형의 상품이 아니라, 시장에서 얻은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축적된 무형의 자산임을 의미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은 "신용" 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정한 크기에 따라 자른 종이에 무엇이 인쇄되는가에 따라 가치와 공신력이 달라지는 지폐도, 소속국의 경제적, 정치적 위상으로 형성된 신용을 반영하여 가치가 부여되는 것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빨라요. 그런데 그 ODM이 그 브랜드 파워라는 신용을 바탕으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신용을 잠식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으니 마냥 방심할 수만도 없어요.

간단한 딜레마 논법을 적용해 볼까요?

만일 ODM으로 납품된 제품이 삼성전자의 자체설계품보다 못하다면 이것은 삼성전자의 브랜드 파워를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ODM 납품업체가 삼성전자의 것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게 가능하면 언제까지나 삼성전자의 하청업체로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성립하지 않아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경쟁사의 납품업체로 노선을 변경하거나, 아예 자체 브랜드를 출범시키거나 하는 식으로 행동할 수도 있고 이것은 삼성전자의 브랜드 파워를 위협해 버리는 결과로 귀결되어요. ODM으로 납품된 제품이 삼성전자의 자체설계품과 완전히 동등해질 경우 또한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이 경우는 이미 ODM이 아니라 최소한 OEM이나 수직계열화, 법인통합 등이니까 자동으로 난외의 사항이 되어 버려요.

이 과정에서 소비자가 "삼성 아닌 삼성제품" 을 배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특히 성골 진골 따지는 경향이 강한 소비자들이 그런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ODM의 실패사례가 여러모로 반증해 주고 있어요.


이런 ODM은 이미 20세기의 마지막에 미국에서 상당히 활발해졌어요. 특히 자동차기업인 GM이 이것을 아주 많이 했는데, GM의 미국 내의 각 디비전, 즉 쉐보레, GMC, 캐딜락, 올즈모빌, 폰티악 등의 각 브랜드가 한 플랫폼의 차량을 엠블렘 등의 소소한 외장만 다르게 붙여서 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당시 자본지배중인 외국의 자동차회사인 일본의 스바루 및 이스즈, 독일의 오펠, 영국의 복스홀, 호주의 홀덴, 스웨덴의 사브 및 한국의 GM대우(현재의 한국GM) 등의 자체개발 자동차를 GM의 각 디비전의 브랜드로 판매하는 경우도 흔했어요. 그리고 그 결과는 처절히 망하는 길...

그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GM은 미국 정부가 최대주주가 되고, 1997년에 독일 다임러그룹과 통합한 크라이슬러는 결국 2014년에는 이탈리아의 피아트가 인수하여 오늘날에는 FCA, 즉 피아트-크라이슬러 자동차(Fiat Chrysler Automobiles) 그룹으로 재편되는 등의 수난사를 경험한 뒤에야, 요즘에는 국내의 방송광고에도 광고가 많이 나오고 실제로 거리에서 그 제작사들의 자동차들을 어렵지 않게 볼만한 수준으로 회복했어요. 그리고 그런 성공을 견인한 차종은 대체로 오리지널.


물론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는 힘들지만, 과연 ODM이 정답이기만 할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어요. 게다가 중국 산업계에 만연한 모럴해저드를 생각하면, ODM이 Ordering Defective Merchandise, 즉 결함품 주문으로 가지는 않을지 벌써부터 우려가 안 될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