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중국의 고사 중 한단지보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의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멋있다는 말을 들은 어느 연나라 사람이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배우러 갔다는데, 정작
자신이 원래 어떻게 걸었는지도 잊어버려서 기어서 돌아가는 수모를 겪었다는 이야기. 이것이 바로 한단지보의 유래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고사성어를 보니 명동 상인들이 겪는 이중고가 생각나고 있습니다.
서울의
명동은 그 브랜드가치가 공고한 지역으로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지간한 지방에 명동의류라는 이름의 의류점도 있었을 정도였으니 그
위상은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을 정도. 게다가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주로 강북을 찾고, 명동은 서울의 필견코스 등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명동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말하는 여러 언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략 10년 전 쯤에는 일본어가
대세였던 듯한데 최근에는 중국어가 대세로 정착된 듯.
그런데, 외국인, 특히 중국인들의 왕래가 급증하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인
고객은 밀려난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인 고객들이 우대받으면서 한국인 고객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풍조가 어느덧 어떤 명동 상인들
사이의 불문율로 자리잡은 것 같았습니다. 10개, 20개씩 사는 중국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하나 둘 살까말까 한 한국인은 더
이상 명동을 찾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부터 중국인들의 행렬은 갑자기 중단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전박대당하던 한국인이 다시 명동을 많이 찾지는 않았습니다. 명동이 아니라도 쇼핑, 관광을 위한 선택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아니, 단지 쇼핑만을 위해서라면 굳이 밖에 나가야 할 필요도 없고, 옥션이나 G마켓같은 국내 통판, 아마존, 이베이,
라쿠텐같은 해외 통판도 있으니 외출의 필요성은 더욱 줄었습니다. 그 결과 명동 상권은 예전같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동정하는
여론은 과문의 탓인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인 고객을 무시한 어떤 상인들이 자초한 결과니까요.
많이 사는 고객이 보다 중요하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자동적으로 적게 사는 고객을 무시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누구도 한 적이 없습니다.
경중은 있을지언정, 누구나 고객으로서 최소한의 배려를 받을 권리는 있는 법인데, 그것조차 거부당하고 내몰린 한국인 고객이 명동
상인들을 호의적으로 대할 시점이 언제 올지는, 아니 올 수 있을지조차 지금으로서는 무엇도 알 수 없습니다.
후세에 누군가가, 이런 행태를 명동지상(明洞之商)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김삿갓 스타일로 평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明洞明洞商不明 명동 명동 하지만 장사치는 명석하지 못하고
呼客呼客人不向 손님을 부르고 또 불러도 사람들은 돌아보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