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를 읽다가 문장 하나를 접하고, 그 말의 무게에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독일 베를린 시의 어느 택시운전수가 한국인 기자에게 말한 한 마디인, 제목으로도 채택한 "당신은 아이의 안전을 단속 시간에만 지키나요?" 라는 반문. 2018년 10월 10일 조선닷컴에 올라온 기사
[기자의 시각] 獨 택시 트렁크에 있는 카시트에 나오는 말입니다.
지난달 말부터 국내에서는 영유아용 카시트 관련 단속으로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습니다. 실제로 장비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다 대중교통에서는 아예 이것 자체를 기대할 수 없었다 보니 법규, 단속, 제도의 정착이 모두 따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사에서 소개된 독일의 사례는 정말 합리적이군요.
동승자 중 영유아용 카시트를 이용해야 할 나이 및 체격의 아이가 있는지를 승하차 도우미에게 말하면 그는 무전으로 카시트를 탑재중인 택시를 수배합니다. 그리고 카시트를 탑재한 택시가 오면 트렁크에 적재된 카시트를 꺼내서 좌석에 장착하고, 아이를 카시트에 타게 합니다. 이 시스템이라면 개인이 일일이 그 무거운 카시트를 휴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탄했습니다.
또 놀란 것은 택시운전수의 그 발언.
안전은 언제든지 지켜져야 하고, 그 점에는 예외나 느슨함이 있을 수 없는 것. 그 택시운전수는 그 점을 제대로 알고 있고, 승객의 잠깐 동안의 방심을 저 반문으로 경계했습니다. 합리적인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가 운용되는 현장 각 분야의 종사자들이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마련입니다.
합리적인 제도, 그리고 그 제도의 생활화를 보여주는 저 베를린 시의 어느 택시운전수의 반문, 근본적인 변화는 조금도 없어 국내의 안전관리 실태와 그것을 대표하는 4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어휘 사고공화국이 너무나도 크게 대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