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우익몰이가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으로 귀결될 때

마드리갈 2017.07.26 19:02:27

일본관련 사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흔히 말하는 "우익" 문제인데, 이것들을 관찰해 보면 몇 가지 문제에 눈뜨게 되어요. 특히 그 중에서도 납득하기 어렵거나, 아예 수용 자체가 불가능한 결론이 도출되었을 때에는 과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중론은 대체로 이러해요.

일본이 우경화되었다, 창작물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짙다, 일본은 혐한사회로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등등...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1954년생)가 다시 총리가 된 2기 아베내각의 성립(2012년 12월 26일) 이후로는 이러한 중론이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 여기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러해요.

"그럼, 요시다 시게루는 평화주의자였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는 대일본제국헌법 체제의 마지막 총리이자, 현행 일본국헌법 체제의 첫 연속 4선총리를 역임한 5선총리였어요. 그리고 미군정 휘하의 일본을 주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내부적으로는 자민당 55년 체제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요시다 시게루는 당대 일본의 고위관료 중 외교관 생활 덕분에 국제감각 및 현실인식이 상당히 좋은 이례적인 경우였을 뿐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다른 내셔널리스트와 차이가 없었어요. 즉 그가 딱히 평화주의자였던 것은 아니었어요. 

요시다 시게루는 쇼와덴노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위하려 할 때 퇴위를 막은 경력도 있고, 일본 황실의 권위가 상당히 약해진 1950년대에 "시대착오적" 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의 태도도 보였어요. 이미 이런 데에서 그의 성향이 어떤지는 확연히 보일 거예요. 그리고 1947년부터 시행된 일본국헌법을, 1948년부터 공산주의 세력이 대거 활동범위를 넓히게 되어 급변한 국제정세와 미국측의 일본에 대한 군비강화요구를 반대의 논거로서 적극 활용하기도 하였어요. 이것은 그가 특별히 평화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세계열강으로 다시 성장하지 못하게 하려는 미국의 세계전략을 전제로 한 일본국헌법을, 바뀐 국제정치상황하에서 일본이 다시금 세계열강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군비투자 대신 경제성장에 국가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합법적인 도구로 활용한 것임에 다름이 아니예요.


이것은 국제정치학자이자 워싱턴대 교수인 케네스 파일(Kenneth B. Pyle, 1936년생)의 저서 Japan Rising에서도 엿볼 수 있어요. 저서에서는 요시다 시게루의 여러 발언이 인용되어 있으니 몇 가지를 소개해 볼께요.

요시다 시게루가 처음으로 총리가 된 1946년에 한 발언 중, "전쟁에 지고도 외교에 이긴 역사는 있다(戦争に負けて外交で勝った歴史はある)" 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19세기 전반 전쟁에 지고도 비엔나 회의를 통해 강대국 대열에 복귀한 프랑스를 염두에 두고 앞으로의 외교방향을 시사하는 것이었어요. 또한 "미국이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영국보다 강해진 것처럼, 만일 일본이 미국의 식민지가 되더라도 결국에는 일본이 더 강하게 될 것이다." 라고도 발언했어요.

또한 미국 정계에서는 일본국헌법 제9조가 실수였다는 발언이 속속들이 나왔어요.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화, 소련의 원폭실험성공, 국공내전에서의 모택동 공산당정권의 승리, 6.25 전쟁 등으로 공산주의 세력의 확대가 노골화되자 기존의 추축국들을 무장해제시켜 두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른 미국은 마셜플랜, 서독과 이탈리아의 재무장 및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체제에의 편입, 일본의 재무장 등을 추진하게 되는데, 일본은 이 문제에서 미군정의 요구대로 만들어진 일본국헌법을 토대로 미국의 요구를 매번 거절하다가, 그 타협책으로 자위대를 설립하게 되어요. 이것 또한 요시다 시게루가 총리재직중에 있었던 일이었어요.


그렇다면, "보통국가화" 라는 표현으로 익숙한 일본의 군사대국화 행보가 갑자기 아베내각에 들어서 일본이 갑자기 폭주해서 우향우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도 드러나는 셈이네요. 즉 일본의 국가전략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꾸준히 추진된 것이었고, 그러한 성과는 쌓이면 언제든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요. 일본이 갑자기 우경화되었네 하면서 섣불리 결론을 낸다면, 결국 요시다 시게루가 평화주의자가 절대 아닌 내셔널리스트 중의 한 사람인데 그를 평화주의자로 불러야 하는 모순이 생기게 되어요. 게다가 당시 일본국헌법 제9조가 실수였다는 발언을 한 당시 미국 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은 2차대전 당시 태평양전선에서 해군장교로 복무한 경력이 있음에도 갑자기 친일파가 된 셈이고, 우리나라 해군의 세종대왕급 구축함의 기원이 일본 해상자위대 건립에 공헌한 미 해군 제독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 1901-1996)의 이름을 딴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에 기반하니까 그 군함의 도입이 역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억지주장도 합리화될 수 있게 되네요. 여기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요?


또, 이 점을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어요.

흔히 일본의 우익은 혐한과의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일본의 좌익에도 혐한은 얼마든지 있어요. 실제로 일본의 좌파계열정당은 한국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여겼고 북한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도 많았어요. 지금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1959년 니이가타일본적십자센터 폭파미수사건이 발생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한국을 테러국가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아주 거세게 일어났어요. 또한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상당히 많아서 세계최초로 우주개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소련의 발전상, 중국의 문화혁명, 세계각지에서의 저개발국의 공산화 등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 또한 넘쳤고 일본도 예외가 결코 아니었어요. 그 결과 일본의 야당 및 언론은 "한국은 군사독재국가니까 안된다, 역시 북한이 낫다. 과거 식민통치시대의 속죄를 위해서도 재일조선인들을 그들의 진정한 고향인 북한으로 귀국하도록 해야 하는 게 도리이다." 라는 결론을 내게 되어요. 그 결과가 바로 일본적십자사와 북한적십자사 주도의, 1959년에서 1984년에 걸쳐 약 9만 4천명을 북한으로 보낸 재일교포 북송사업이었어요. 이 사건을 보면, 우익이 혐한의 동의어가 아닌 것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어요. 게다가 국내 운동권들이 과거에 많이 읽었던 일본의 이와나미문고(岩波文庫) 등 좌익성향의 서적에서는 북한의 김일성 체제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한국의 국내정치상황을 극렬히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기고문도 꽤 많았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결론을 내려도 좋겠네요. 일본의 좌익세력의 혐한태도는 결국 우익행보이고, 우리나라의 자칭 좌파, 진보 등은 결국 일본의 혐한을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본에서는 좌익이 곧 우익이고 한국 내의 진보세력은 일본의 혐한과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되는데, 일단 모순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 자칭 진보세력은 누구 말처럼 "애국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 아니라 "혐한하는 방법이 다른" 것에 지나지 않게 되네요. 이 결론에 수긍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익몰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을 마주해야 하는 사태까지 쉽게 일으키고 말아요.

그리고 또 한가지.

우익 컨텐츠를 제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게 정당하다면,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좌익 컨텐츠를 금지했던 조치 또한 정당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렇다면 현대민주사회를 살면서 결국 그 권위주의 시대의 정책에 동의한다는 의미가 되어요. 그러면 검열의 절대적 금지를 규정하는 현행헌법은 과연 뭐가 될까요?


우익이니까 안돼 어쩌고 하는 우익몰이가 자승자박의 시작이 되지 않도록, 우익몰이에 경계를 기울여야 할 거예요. 수용할 수 없는 결론을 받아들여야 하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