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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사법 - 공중화장실이 아니니까 죄가 없는걸!!

마드리갈 2016.09.18 19:58:53
연휴가 끝나는 오늘 읽은 기사 하나가 참으로 대단해서 정말 뭘 말해야 할지 모르다가 제목을 겨우 정했네요. 제목의 유래는 일본 카도카와서점의 미디어믹스 컨텐츠 스트라이크 위치즈의 명대사인 "팬티가 아니니까 부끄럽지 않은걸!!"

일단 이 기사를 읽어 볼까요?
'공중화장실' 아니라고… 실외화장실서 여성 용변 훔쳐본 남성에 대법원 '무죄'  (조선닷컴)

일단 이 판결의 성격을 논하기 전에 라틴어 격언 두 가지를 인용해 봐야겠어요.
Conditio sine qua non(원인 없으면 결과도 없다).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음식점 부근의 실외화장실에서 여성이 용변중인 것을 엿본 남성이 무죄가 된 이유는, 일단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성범죄 처벌법에서 규정한 공중화장실이 아니라는 것이라네요? 게다가 공중화장실법에서 규정한 공중화장실의 정의에 해당 장소는 해당되지 않기에 결론적으로는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성립해 버렸어요.

다시 한번 사건을 요약해 보죠.
요약: 음식점 부근의 실외화장실에서 여성이 용변중인 것을 엿본 남성의 죄책은 없다.

이 볼드체로 강조한 문장에 방점을 희한하게 찍다 보니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는데, 사실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대전제를 엿보기라는 행위 대신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설정하게 되면 당연히 저 사안은 불가능을 전제한 것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Conditio sine qua non 원칙에도 합치되었고, 결과적으로 In dubio pro reo 원칙도 준수되었어요. 즉 법리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럼 이 판결은 제대로 된 판결일까요?

당연히 그럴 리가 없어요.
엿보기 등의 범죄를 규제하는 이유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사건의 발생장소가 어디이고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보는 데에서 이미 법의 정신 자체가 실종되었다고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창작물에서는 극단적으로 짧은 핫팬츠나 쇼츠 등의 하의를 팬티가 아니라고 억지를 써도 통할 것이고 개그의 소재도 되겠지만, 평온한 생활을 영위할 자유와 권리를 지닌 현실세계의 사람들에게는 저런 기교사법이 무슨 이익이 될까요. 기교사법이 횡행해서 법의 권위가 얼마나 살아 있을지가 당장 의심되지만, 저는 현실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역량이 아직 없으니 범죄의 타겟이 되지 않아야 하는 게 우선이겠어요.


어이없는 뉴스가 한 건 더 있지만 이용규칙에 저촉되는 것도 있으니 생략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