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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닳게 만드는 사회

SiteOwner 2016.03.29 23:10:30

이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한국사회의 각종 고질적 문제들을 통괄하는 어구가 있다면 무엇으로 압축가능한지를.

그리고 표현해 보고자 합니다.

"사람을 닳게 만드는 사회" 라는 4어절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비록 어느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그런지는 모두 열거할 수 없겠습니다만, 일단 인간관계, 시험제도, 비즈니스모델의 세 축에서 그게 유독 심하다고 판단되고 있습니다.


우선 인간관계.

물론 해외라고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유독 국내에서 심한 것으로는 성씨, 본관, 출생지 등의 선택불가능한 것에 의한 옭아매기가 있고, 그것 이외에도 별별 기준으로 줄세우고 낙인찍는 일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틀에 맞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를 않습니다. 이게 그냥 오프라인에서만 그렇다면 그건 또 문제가 좀 덜할 것인데, 각종 혐오를 노정하는 언어, 단톡방으로 약칭되는 메신저 기능을 이용한 옭아매기 등 다양한 형태로의 변용을 거쳐 온라인에서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누가 멀쩡히 살아남겠습니까.


시험제도도 사람을 닳게 만들어 버립니다.

각급학교 및 대학의 입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수능시험 듣기평가 도중에 항공기 이착륙을 금지시키는 배려심을 정 발휘해야겠다면, 그 마음을 교육의 사각지대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돌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도 진로에 고심을 해야 할 정도로 변별력이 형편없으니 그냥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부에만 특화된 그러한 스터디머신이 되어야 합니다.


비즈니스모델로 가면 더욱 가관이 되어 버립니다.

앞에서 말한 인간관계나 시험제도와는 또 다른 장벽이 있는데, 무슨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아니고,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에게 앞의 두 축을 벗어나라고 말하지만 정작 깔아놓은 카페트는 철저히 그 두 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폭넓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지니면서, 어떠한 일이 주어져도 조금의 오차도 없이 예외없이 완벽하게 직무수행을 해내고, 적은 급여 및 긴 근무시간에 만족하면서 집에 돌아가면 여유있게 취미생활을 즐기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실제로 이런 사람들을 원하고, 그래서 각종 까다로운 전형이 몇 라운드에 걸쳐서 일어나지만 그렇게 난관을 뚫고 입사한 신입사원 상당수가 채용된 해 또는 수년의 단기간에 회사를 떠난다니까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지요. 게다가 해당분야의 최고의 숙달된 인력이 전혀 실수가 없다는 가정하에 업무소요시간을 잡는다든가, 앞으로야 어떻게 되든 겨우 품질기준만 통과할 수준으로 제품을 내놓고 그것을 독려하는 관행을 지속하는데 여기에서 무슨 창의와 혁신이 나올까요?


이렇게 사람을 닳게 만드니까,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당장 프로 운동선수같은 경우 젊은 유망주가 오래 못가고 일찍 현역 선수생활을 접고 말아버리고, 성장기에 체육활동만에만 혹사당해 배움의 양과 깊이는 다른 사람들만큼 미치지 못하여 버립니다. 그리고 운동선수만 그렇겠습니까. 수많은 취업준비생들 또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사람을 닳게 만드는 관행에 대해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과 실천이 없는 한, 이 사회는 생활의 무게에 지쳐 전반적으로 무기력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을 말해 드릴까요? 우리나라의 인구는 5천만명을 좀 넘는데,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의 세계 주요국가들은 물론이고 무섭게 성장해 오는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의 아시아의 신흥국들보다도 인구가 적습니다. 즉 사람이 닳아서 소모되면 확실히 불리한 쪽은 우리나라가 된다는 사실. 인력자원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우리나라에 다가올 미래가 우리의 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