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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의 두 남학생 이야기

SiteOwner 2015.05.19 20:24:19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두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K군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저였습니다. 그리고 키가 꽤 작은 편이어서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기면 보통 5-6번 정도가 됩니다. 저는 4학년 때에는 전학생이라서 당시에는 여학생만 받을 수 있는 번호였던 38번을 받았고(해당 게시물 참조), 5, 6학년 때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5-6번 정도를 배정받았습니다. 그리고 K군의 번호도 저와 인접했습니다. 키는 제가 조금 작았습니다.


4학년 때에는 이름 대신 전학온 아이로만 불리고, 5, 6학년 때에는 외모에서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저와는 달리, 그 K군은 잘생기고 성격이 밝아서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번호가 가까운 K군은 저에게도 친절해서 좋은 친구가 될 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K군이 반장선거 및 학생회장선거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반장선거에서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위인 중에서 키가 작은 사람이 많았다면서, 작아도 능력은 좋다는 점을 상당히 크게 어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예로 나폴레옹을 들고,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도 인용하였습니다. 아무튼 반에서 전반적으로 인망이 두텁다 보니 어렵지 않게 K군은 반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학생회장선거에서도 나폴레옹을 위시한 단신의 위인 이야기, 작은 고추가 맵다는 등의 말을 연설에 포함시켰습니다. 일단 당선되기는 했습니다만, 조숙한 남학생들끼리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그 속담을 성적으로 해석하면서 뒤에서 조롱하기 일쑤였습니다. 저도 성지식에 대해서 알아가는 단계라서 걱정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습니다.


K군과 저는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고, 역시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교도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1학년까지였지요.

2학년 1학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저는 키가 많이 자랐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같은 반이 된 K군의 키는 거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입학 당시 K군의 키가 저보다 2-3cm 정도 컸지만 학년이 바뀌자 키가 커진 쪽은 저였고, K군과의 격차는 10cm를 쉽게 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중학교도 역시 키 순서로 번호를 붙였는데  K군의 번호는 보다 앞으로 당겨지고, 저는 남학생 중 가장 뒤의 번호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변해 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K군이 저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키가 큰 사람들을 비하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습니다. 반장선거에 나온 K군은 출마의 변에서 또 국민학생 때에 했던 단신의 위인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키가 큰 사람은 싱겁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저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느닷없이 반장선거에서 공개비난을 당한 저는 K군에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반장으로서 뭘 하겠다는 건데?"


결국 K군은 반장선거에서 낙선했고, 저와의 친교도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더 이상 K군과 재회할 일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K군을 키에 사로잡히게 했던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저와의 친교를 공개비난으로 끝장내야 할만큼 중요하고 절박했던 것인지, 지금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씁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