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활 속에서 많은 글을 읽습니다.
그 글 중에는 무릎을 탁 칠만큼 탁월한 것도 있는 반면에 읽고 나서 눈만 버렸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있습니다. 읽어서 감동도 재미도 정보도 얻을 수 없는 그러한 글에 대해서는 폐기물이라는 표현조차 아까울 정도가 있습니다. 특히 기술에 대한 인식이 일천할 글을 읽을 때는 그 의도는 물론 작자의 능력과 성의까지 의심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기술을 알 수도 없는 법이고, 글을 쓰기 위해서 반드시 다루는 분야에 대해서 학위를 취득해야 하거나 문외한은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인용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사전조사를 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안 된 상태에서 특정 기술사항에 대해서 왈가왈부한다면 그러한 글이 제대로 될 리는 없는 법입니다.
기술에 무지한 글쓰기의 사례는 많지만 당장 생각나는 것은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대만의 문필가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이 쓴 수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어느 신문에서 읽은 칼럼입니다.
임어당의 수필에서는 미국인 토목기사와 중국인 토목기사를 대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미국인은 계측을 철저히 해서 양쪽에서 터널을 파들어가기 시작하면 오차 없이 정확히 한 점에서 만나서 하나의 터널을 만들지만 중국인은 그렇지 않아서 2개의 터널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처음에 1개를 파려고 했는데 2개가 만들어져서 만족합니다. 이것이 흔히 중국인의 여유로 미화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사실 이런 글을 쓰는 데에 실드공법, 아머공법, 벽체에 콘크리트를 뿜어붙이는 오스트리아식 터널굴착법(New Austrian Tunneling Method, 약칭 NATM) 등을 전공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토목공사에서 왜 정밀도가 높아야 하는가 그리고 잘못된 터널시공이 어떤 참사를 불렀는가 정도는 최소한 문헌을 읽고 습득하거나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 이해도 없이 그냥 문사적인 발상으로 웃어 넘겨서는 안됩니다.
또 국내 어느 신문에서 이것과 비슷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경의선 남북철도연결을 앞두고 공사구간의 지뢰제거가 예정된 때에 나온 그 칼럼의 내용을 읽고는 할 말을 잊었습니다. 해당지역을 발파하거나 지뢰제거용 장비 등을 동원하여 지뢰를 폭발시켜 제거하면 환경오염의 우려가 있으니 군인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정성스럽게 지뢰를 제거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내용을 보니 대체 이 사람이 지뢰가 어떤 물건인지 알고나 쓰는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지뢰라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물건입니다. 아무리 방호력이 강한 전차라도 대전차지뢰를 밟아서 궤도가 풀리는 것만으로도 주행이 불가능하게 되고 전투력을 잃게 되어 저지효과가 아주 큽니다. 게다가 쉽게 제거하지 못하도록 여러 억지수단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도약지뢰 같은 것은 지상에 아주 작은 작동신관이 노출되어 있고 그것을 건드리면 도약하여 폭발하면서 폭심점 수십미터 내에 있는 병력을 몰살해 버립니다. 이런 것을 그 칼럼대로 인력으로 제거할 경우 희생되는 인명은 아깝지 않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것을 알면서 썼다면 그 의도가 순수하지 않고 모르면서 썼다면 무지몽매함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주장을 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글쓰기도 그 주장에 포함되니 역시 자유입니다.
그러나 쓴 글에서 말하는 바가 정당성을 얻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므로 혼동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특히 인용하는 사항이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 특히 기술적인 것이라면 글을 쓰기 전에는 최소한의 사전조사 정도는 해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글의 폐해는 위에서 언급한 임어당의 수필 및 신문의 칼럼같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