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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어제가 9.11 23주기였습니다.

Lester 2024.09.12 11:38:46

그렇습니다.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했던 9.11 테러입니다. (지금 찾아보니 1993년에 알카에다가 일으킨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와 혼동될 수도 있고 규모가 훨씬 더 크기에 9.11로 명명한 것 같습니다.)


2001년 당시의 저는 슬슬 중학생으로 올라가던 즈음이라 세계정세는커녕 우리나라의 사회상에 대해서도 잘 몰랐습니다. 비극 정도란 것만 알았지 그 파장이 얼마나 크리란 건 전혀 예상도 판단도 할 수 없었죠. 그렇기에 9.11 테러가 벌어졌다고 했을 때는 테러 그 자체보다 연기에서 악마의 형상이 보였다더라 하는 음모론 같은 것에나 더욱 흥미가 동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학습만화가 아직 정보전달에 집중하던 시절에 세계의 테러 어쩌구 하는 학습만화에서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와 함께) 9.11 테러에 대해서 알아보긴 했지만, 역시 학습만화라 그런지 토비를 찾는 어느 여인에게 경찰이 남편 이름이냐고 묻자 개 이름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들어가 있는 등 실제 사건의 심각성은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알겠지만 미국은 이 사건 이후로 완전히 바뀌어버렸고, 뉴 밀레니엄을 기다리며 희망과 환희로 가득했던 전세계도 얼어붙었습니다. 우리나라야 9.11 테러 1년 뒤에 벌어진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주최국으로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지만 그 이후로 그 때 같은 열기는 느끼기 힘들죠. 물론 좋았던 과거 편향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크게는 피랍사건에 대남도발에 독도에 신냉전에, 작게는 사이버불링이나 황금만능주의 등 '당사자'로서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터졌고,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9.11 테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다다르면서 서서히 체감한 것 같습니다. 이건 좀 과장이고,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전세계적 타격의 '당사자'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요.


시간이 지나면 슬픈 일은 잊고 좋은 일만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만, 저로서는 내신등급제 세대이기도 하고 양극화된 사회에서 취업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던 터라 도저히 좋은 일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솔직히 2002년 월드컵도 저한테는 그냥 남의 일이었어요. 남들처럼 저녁 늦게 월드컵 경기를 챙겨본 것도 아니었으니. 그 때부터 주류와 괴리되는 삶을 살아왔는데 그 이후야 더 말할 것도 없고... 덕분에 사회나 남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창작이나 게임번역이라는 주관을 지켜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좋은 일도 없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인지 칼부림 같은 묻지마 범행을 제외하면 테러라고 할 만한 대규모 사건은 없습니다만... 혹시나 하나라도 발생한다면 그 파장이 엄청날 것 같습니다. 사건과 별개로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또 이용할지에 대해 의견이 확연하게 갈렸던 것을 이미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압사 사고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보통 음모론이 아니라 '아이들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라는, 피해자에 대한 존중은커녕 격하시키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으니까요. 다행히 우리나라의 치안과 안보의식이 좋아서 이렇게 허황된 주장을 늘어놓을 만한 대규모 테러가 터지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 생각합니다만, 군대도 슬슬 징병에 문제가 생기고 경찰도 수준이 저열해지는 상황을 봤을 때 언제까지 낙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2001년 이전에도, 2001년 9월 11일 당시에도. 2001년 이후에도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분투하시는 공무원들 중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과 무사하신 분들의 안녕을 빌며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