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Renault Korea)에서 터진 문제가 일파만파이고 이 사태가 국내문제뿐만이 아닌 국제문제로 계속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예의 사태란 르노코리아의 사내 유튜브 홍보채널인 르노 인사이드 Renault Inside(
유튜브 바로가기)에 수록되었던 각종 홍보영상에 브랜드매니저가 남성혐오 손동작을 반복해서 집어넣은 것이 공론화되어 일어난 일련의 사태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 기사를 보시면 대략 파악이 될 것입니다.
저 리포터D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관심이 없는 저로서는 저 사안을 성별갈등이라고 말하는 세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저건 성별갈등이 아니라, 직무윤리 자체가 결여된 행태니까 갑론을박할 여지조차 생기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별갈등 운운하니까 갖은 헛소리가 난무합니다.
사실 정치적 소비는 아주 예외적입니다. 생산자나 판매자의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구매여부가 판가름나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 거래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좁혀지면서 상행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계약의 영단어가 컨트랙트(Contract)인 것도 결국 그렇게 "서로 좁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의 수렴의 여지가 없어진다면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 상황이 정당화되는 것이 바로 예외적으로 일어나는 정치적 소비인 것.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구사하지 못해서 표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것이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상황에서는 아예 구사하지 않으니까 표현할 일도 없고, 상행위에서는 더 언급할 것도 없습니다. 문제의 리포터D는 그것을 어겼으니 직무윤리가 결여된 것이고 그러니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리포터D가 그렇게 그 정치를 말하고 싶었으면 그것이 적합한 장소에서 하면 될 것이지, 그것을 다른 데서 할 정당성 따위는 애초에 없는 것입니다.
보통 갈등이라면 상호작용을 전제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성별갈등이라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서로 뭔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알력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되면 책임소재도 분산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예의 사건은 문제의 리포터D가 일방적으로 저질렀고 그 채널 운영자도 문제점에 대해 결과적으로 전혀 자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항의한 것이므로 문제의 남성혐오 표현이 등장할 때 상호작용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성별갈등 논란이라는 논리 자체가 거짓입니다. 이런 거짓된 논리를 전제로 한 설왕설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평가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르노코리아는 이 새태로 인해 새로이 출시한 자동차인 그랑 콜레오스(Grand Koleos) 흥행에 차질이 생겼다고 합니다. 결국 직무윤리의 결여가 만든 이 사태가 성별갈등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정치는 정치판에서 했으면 합니다. 상행위의 장에서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