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재판(人民裁判, People's Court)이라는 말은 그럴듯한 위선이죠.
인민의 힘으로 누군가의 죄상을 밝히고 처분을 가한다는 자치의 원칙에 충실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누군가를 다수의 힘으로 침묵시키거나 굴복시키거나 배제하는 비겁한 행동에 지나지 않아요. 그리고 실제로 인민재판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각종 사적제재가 그 본질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소련의 1심재판소인 나로드니이 수트(Народный суд) 같이 사법제도의 한 분야라도 실상은 불합리와 차별이 제도화되었을 뿐인 것도 그런 인민재판의 위선적인 면모를 보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요.
국내 연예계에는 별로 관심도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최근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서 의아하게 여기고 있어요.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이 교제중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대해서 카리나의 팬들이 비난하는 것은 물론 소속사의 사옥 앞에서 전광판이 적재된 트럭을 동원하여 시위를 하는 등의 험악한 반응을 보인 일도 있었어요. 여기에 대해서 카리나 본인이 자필 사과문을 공개하기까지 했고 그것에 대해 영국의 BBC가 보도하기도 했어요.
여기에 대한 BBC의 보도기사 원문 및 국내언론의 인용보도를 같이 소개할께요.
본원적인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애초에 교제가 사과할 일인가 하는.
그리고, 팬은 대체 연예인에게 무엇을 구하는 건가 하는.
그리고, 이렇게 특정인을 다수의 힘으로 굴복시켜서 얻을 것은 과연 무엇인지도 의문스러워요.
지난달이었죠.
미국의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1989년생)가 그녀의 연인인 미식축구 선수인 트래비스 켈시(Travis Kelce, 1989년생)가 소속된 캔자스시티 치프스(Kansas City Chiefs)가 경기에서 우승하자 미식축구 팬들의 시선을 받으며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어요(
기사 바로가기, 영어). 이 장면이 참 아름답게 보였는데, 글로벌과 선진성을 외치면서 왜 여전히 편벽되고 퇴영적인 인민재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까요? 이런 건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일까요?
이렇게 인민재판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섬뜩해지고 있어요.
그리고 이 사안이 잠잠해지면 그 다음 인민재판에 누구를 올릴까를 찾아 나서겠죠. 한번 그렇게 인민재판을 하던 자들이 두번 세번은 못할 것도 없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