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단순히 생각한 교복이 어쩌다 다문화 문제로

Lester 2024.01.25 01:03:50




요새 1월인데도 갑자기 작업량이 늘어나서 조금 일하다 허리가 아파 누워서 쉬다가 종종 그대로 잠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창작은 어떻게든 해보고 싶어서 머릿속으로나마 계속 생각을 해보고 있는 게 바로 '교복'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1차적으로는 저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측면이 컸습니다. 그래도 기왕 '국제적'이란 제목을 달고 소설을 (지금은 쉬고 있지만) 쓰는데 개인적인 것만 고집할 수는 없어서, 객관적이고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보다가 '다문화'라는 데에 도달했습니다.


----------------------------------------------


일단 교복은 기본적으로 똑같이 생겨서 통일성, 그렇기에 같은 집단이라는 소속감을 부여합니다. (더 나아가 외국계 일본인 유튜버 ONLY in JAPAN의 일본 교복 취재 영상에 나온 것처럼 '젊음을 만끽한다는 상징'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이건 개인마다 다를 수 있으니 논외로 쳐야 할 듯합니다.) 특히 제 소설의 배경인 미국은 예로부터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리며 여러 인종이 뒤섞여 살고 있는 만큼, 교복은 이 다문화를 제도적-공적 차원에서 지키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위 영상 초반에서 '다문화를 빌미삼아 동화를 거부하거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을 막고 (종교적-문화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라는 측면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역시 영상에서도 나오지만 다문화라는 이유로 이주민 혹은 난민들이 전세계로 퍼졌지만 굴러온 돌의 입장이면서 자신들의 개성을 지키겠다며 동화를 거부하다 못해 범죄 혹은 폭동으로 번지는 사건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도 이슬람계 이주민들이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모스크 건설 혹은 샤리아 허용 등을 요구하거나, 국적에 상관없이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잃을 게 없다는 식으로 막 나가는 사건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동남아계 이주민들이 대한민국 국적 취득만을 위해 일가족을 데려와 사는 것은 살짝 맥락이 다르니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그래서 영상 초반의 주장에 대해서는 수긍을 했습니다. 어느 나라에 살면서 그 권리를 누리려면 그 나라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의무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에는 인도주의에 따라서 난민을 무진장 받거나 지원을 했죠. 여유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불황이 닥치면 국가 지도자들로서는 자국민을 먼저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라고 그 나라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지도자로 뽑아줬으니까요. 이주민들 입장에서는 '얘기가 다르잖아'라고 화를 내겠습니다만, 사실 과거에도 "자국이 잘 산다는 전제하에" 받아준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받아준 게 아닙니다. 부각이 안 됐을 뿐이란 얘기죠.


너무 현실적으로 빠져서 다시 가벼운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네요. 어쨌거나 다문화는 기본적으로 공포를, 그 정도가 심하면 혐오와 폭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크툴루 신화로 유명한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1890~1937)에 찾아봤다가 왜 이 사람이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요,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공포는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라는 말을 남겼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러브크래프트는 결혼 생활 동안 뉴욕에 살았는데 (아마도 부유한 어린 시절의 영향 탓인지) 북적대는 대도시 생활을 싫어했고, 또 뉴욕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도 싫어했기에, 그 영향이 초창기 작품은 물론 공개 서신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물론 나치의 홀로코스트처럼 히틀러 개인의 분노가 체제로 확대되는 사례도 있으니만큼 한 가지로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기만 했다면 인접한 지역끼리 문화가 비슷해지는 현상이 발생할 리가 없으니까요. 다만 그 과정에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분쟁과 학살이 수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몽골이 고려를 침략한 부분이 (인과관계 문제상) 크게 부각되지만, 그러면서 고려양(몽골에서 고려 문화를 받아들여 현지화시킨 문화)이니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니 하는 교류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요는 곧, 문화 교류에서 발생하는 근본적(?) 마찰을 어떻게 얼마나 줄이느냐라고 하겠습니다. (뭔가 뻔한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미국 교육계에서 사립학교가 아니면 보기 힘든 교복을 제 작품에 넣으려고 한 것도 (솔직히 나중에 갖다붙인 거지만) 비슷한 이유입니다. 골치 아픈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비록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허황되게 들릴지언정)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사랑(humanity)에 대한 믿음만은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인간인지라, 위에 나오는 이주민들이 일으키는 문제 같은 소식을 접할 때마다 현지인으로서 울컥하긴 합니다. 그래도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이 서로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한다면 한 쪽이 밀려나지 않고 같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과 희망이 있을 거라 믿고서 싶어서 창작물의 형태로 표현하려는 거죠.


다만 찾아보니 미국 교육계에서 교복이 채택되지 않는 명확한 이유가 몇 가지 있기는 하네요. 대표적으로 상술한 문화적 차이를 교복으로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인과관계가 없다는 반론(4번 참고)이 있습니다. 교복(심하면 스마트폰)이 고가 브랜드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 혹은 집단따돌림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게다가 저 링크된 기사에서는 교복 한 벌당 100달러 x 학생당 최소 2벌 x 공립학교 학생 4400만 명 = "연간(!) 88억 달러(24-01-25 기준 11조 7031억 1640만 원)"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격 부담이나 지역별 기후 차이 등 현실적인 문제를 근거삼아 드레스 코드(주로 색상)로 절충하는 지역 및 학교를 근거삼아 굳이 교복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당사자인 학생들이 교복을 싫어한다는 것은 통계와 민주주의의 함정 같은 상황이니 넘어가겠습니다.)


물론 창작물이니까 정말로 가격부터 작업 공정 같은 걸 일일이 반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논문도 아닌데 누가 읽고 싶어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글을 쓰면서 '고급 브랜드로 금수저 티내는 계급차별 같은 건 묘사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 혹은 일말의 아쉬움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더 생각해 보니, "나는 기분 잡치는 내용을 왜 '굳이' 쓰려고 하는 거지?"라는 반발감도 올라왔네요. 뭐 갈등이 있으면 이야기가 재밌어지긴 합니다만, 연재(실천)도 안 하면서 계획만 앞세워서 뭐하나... 라며 한심한 생각도 듭니다.


----------------------------------------------


영상 하나 보고 쓰려고 했던 글이긴 한데, 요새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왔다갔다하면서 적은 것 같네요. 나중에 옛날 글을 찾아볼 것을 대비해서 요약하자면, "교복은 작중에서 문화통합의 수단으로 쓰이긴 하나, 소재일 뿐이니 너무 깊거나 심각하게 대하지 말자." 정도가 되겠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포럼 분들께선 (1) 학창시절에 어떤 교복을 입으셨는지, (2)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교복을 (다시) 입고 싶은지, (3) 입는다면 어떤 스타일이 좋은지도 궁금합니다. 제 의견을 짧게 적자면...

(1) 중학교-고등학교 둘 다 블레이저, 소위 정장 스타일로 입었습니다. 속에가 목티냐 셔츠와 넥타이냐만 달랐네요.

(2) 개인적으로는 딱히 반감은 없습니다. 패션감각이 없는 저로서는 차라리 교복이 더 편해요. 묻어갈 수 있으니까.

(3) 넥타이 있는 거면 다 좋습니다. 공부를 못해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넥타이의 마법(?)이기도 하고, 전문적 혹은 회사 느낌이 나서 그런지 단체생활의 입문편 같은 느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