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쓸 글이 있긴 했는데 예상보다 더 길어져서 그건 나중에 쓰기로 하고 이것부터 써 보려구요.
오래전 일이었죠. 고등학생 때 일이었는데 교사가 뭐랄까 혼자 폭주했어요. 아무도 물어본 적 없는데 자신의 집안이 노론 집안이라서 소론 집안과는 통혼을 안 한다고. 소론 놈들과 어디 사돈관계냐 운운했는데 21세기에도 노론 소론 타령을 하는 것에 꽤나 어이없었던 게 여전히 기억에 새롭다고 할까요. 그러해요.
그런데 그런 것을 제외하면 그 교사에 대한 나쁜 기억은 없었어요. 그나마 저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음은 물론 저에게 꽤나 우호적이었으니까요. 저의 한자실력을 고평가하는 것도 있었다 보니...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소속 부활동인 도서부의 고문교사로도 임명되기도 해서 학교내에 우호적인 어른이 이렇게 있다는 게 매우 소중하게 여겨졌죠. 그렇지만 그것도 수일간의 희망으로 끝나고 말았어요. 갑자기 별세하면서 결국은 그것으로 인연이 끊겨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도서부원 자격으로서 문상을 갔을 때 충격적인 장면을 보기도 했어요.
빈소 앞에서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조문객들의 모습. 그리고 학교의 다른 교사들이 잘 그랬었죠. 진정으로 고인을 추모하고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 그 자리에 있던 교사들에서는 한 손으로도 충분히 셀만큼. 마음같아서는 한소리 하고 싶지만 고인과 고인의 가족에 누가 될까봐 그냥 참고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이 오래전 이야기가 이런 함의를 지니는 것 같네요.
사실 노론 소론 타령이 수만년 전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고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존재했던 조선시대 후기의 일시적인 현상이었을 뿐이죠. 그나마 그런 것은 이제는 현대에 미치는 영향은 사실상 없지만, 고인의 빈소에서 저렇게 경망스럽게 구는 행태는 현재에도 여기저기에서 유효한, 그리고 문제의식이나 비판의 필요성조차 없는 미풍양속(?)같은 "만들어진 전통" 으로 자리잡혀 당분간은 오래 갈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