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차에서는 왜 한국의 철도가 동력집중을 더 이상 고수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았어요. 이번에는 그 회차의 확장판으로서 고속철도차량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관절대차의 실상과 허상을 밝히도록 할께요.
여러분들은 열차의 바퀴를 유심히 본 적이 있으신가요?
수도권 전철 및 지하철처럼 스크린도어가 있는 경우라면 보기 힘들지만, 장거리 운행열차의 경우에는 플랫폼의 높이가 낮은데다 역 구내가 넓어서 다른 열차의 바퀴가 보이기 쉬워요. 그런데 바퀴가 하나가 있는 게 아니라 둘 또는 셋이 한 묶음으로 되어 있는 게 보이지요? 그걸 대차라고 해요. 대차는 긴 길이의 차량도 원활하게 곡선을 돌 수 있도록 차체와는 회전축으로 연결되어 있는, 작은 수레같이 만들어진 바퀴들의 묶음이라고 생각하면 되어요.
KTX 및 KTX-산천 차량을 보면, 다른 철도차량과는 다르게 그 대차가 각 차량의 양끝에 하나씩 있는 게 아니라, 두 객차가 한 대차를 공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렇게 된 차량을 연접차(連接車)라고 부르고, 그러한 대차구조를 연접대차 또는 관절대차(Jakobs Bogie, Jakobsdrehgestell)라고 불러요. 이 대차는 독일의 기술자 빌헬름 야콥스(Wilhelm Jakobs, 1858-1942)가 발명하여 1901년 4월 10일에 특허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영어 및 독일어 표현에는 연접이나 관절이라는 말 대신에 발명자인 야콥스가 언급되고 있어요.
이 대차를 채택한 대표적인 차량에는 대략 이런 것들이 있어요.
이런 연접대차 적용차량에는 다음과 같은 일장일단이 있어요.
장점을 먼저 보도록 하지요.
그런데 장점만 있으면 세계의 철도차량이 모두 연접차가 되었을까요? 약점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럼 약점을 보기로 해요.
따라서 위의 장단점 일람과 그 앞의 차량일람을 볼 때 연접차를 장거리를 운행하는 철도차량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부적합한 부분이 있음을 대략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반대로 중단거리 또는 급곡선 운전에 활용하기 좋은 특성도 있을 테구요.
대표적인 차량 일람에 노면전차가 자주 나오고 있어요.
일단 노면전차에는 연접차가 상당히 적합해요. 왜 그럴까요?
노면전차의 궤도는 도로에 매립되어 있고, 그 도로는 처음부터 마차나 자동차의 통행을 전제하여 건설된 것이니까 기존의 철도차량으로 대응하기에는 최소곡선반경도 너무 작아서 아무래도 너무 긴 차량은 자동차의 통행을 방해하기 쉬워요. 게다가 기존의 차량보다는 확실히 차체를 낮게 할 수 있으니 승객의 승하차 편의 제공의 측면에서도 노면전차는 큰 장점이 있어요. 편성길이도 버스보다는 높고 기존의 철도차량보다는 낮은 중간 정도의 수송력을 제공하기에는 적합해요.
또한 근교 중단거리 특급차량에서도 연접차는 강점을 발휘해요.
실제로 오다큐 3000계 특급전차는 1957년 등장 이래, 일본국철의 1,067mm 재래선인 도카이도본선(東海道本線)에서 145km/h의 고속을 기록하는 데에 성공했어요. 그래서 장거리 고속열차에 전차가 적합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오다큐는 로만스카(ロマンスカー)라고 불리는 자사의 특급전차에 꾸준히 이 형식을 적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근거리교통수단인 전차가 간선 장거리수송에도 사용될 수 있게 된 이상 그럼 연접차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희망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아요.
그럼 왜 프랑스는 전면적으로 TGV에 그런 연접차를 전면적으로 채용하고 있고, 스페인의 TALGO의 경우에도 그럴까요? 우선 그 나라의 특수한 사정을 먼저 봐야 해요.
프랑스의 경우는 파리-리용 구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수송밀도가 낮은데다, 고속철도 전용선의 비율이 낮아요. 그래서 선로 신설이 어려운 구간의 경우 재래선구간을 이용한다든지, 문화재 등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속도를 재래선열차의 수준인 130km/h 수준으로 떨어뜨리거나 하는 식의 대응을 하는 식으로 최소한 신규토목공사를 줄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연접차를 활용할 여지도 많아요. 어차피 신설의 고속선이 아니면 최소곡선반경도 수백 미터 수준으로 작을 테니까요.
스페인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인구가 비슷한 수준이면서 국토의 넓이는 한국의 5배에 달하고 철도네트워크는 더욱 광범위하니까요. 게다가 스페인은 1,435mm의 표준궤 말고도 전통의 이베리아궤간인 1,668mm 광궤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어요. 이베리아궤간은 11,829km, 표준궤는 998km로 아직 표준궤가 많지 않은데다 그 표준궤에는 일단 프랑스 기술을 사용한 차량이 우선적으로 쓰이고 있어요. 독일의 ICE-3과 동일한 사양의 지멘스 벨라로 고속전차나 알비아 궤간변경전차는 모두 기존 대차를 이용하고 있고, TALGO는 차량의 길이가 짧은 1축 연접차를 쓰는 등의 독자적인 기술발전양상이 많아요. 그러니 이 두 나라에서 연접차가 많이 쓰이는 것은 연접차가 장거리열차에 적합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들만의 특수사정이 있다고 해석해야 옳은 거예요.
1992년 일본의 JR동일본에서는 STAR21이라는 기술실증차량을 2편성 제작했어요.
이 차량은 952계와 953계의 두 형식이 있어요. 952계는 1호차 26,250mm, 2~4호차 25,000mm 길이의 4량편성이고 1량의 양끝에 2축식 대차가 하나씩 있는 118,8톤의 기존방식의 차량이예요. 그리고 953계는 양단 22,250/25,500mm, 중간차 18,500mm 길이의 108,9톤의 5량편성 연접차로 만들어졌어요. 차체가 알루미늄 합금제여서 상당 수준의 경량화를 도모할 수 있었어요.
이 편성으로 실시된 실험에서 연접차의 성능이 기존방식보다 우수한 것이 보이긴 했어요. 그러나 그 차이는 크지 않았고, 그 주행성능의 대가가 크다는 것이 판명되었어요. 제기된 문제는 높은 축중문제, 유사시의 충격흡수 및 정비성 등이 있어요. 그래서 JR동일본은 일본국철에서 JR로 이행한 후의 첫 독자적인 신칸센전차인 E1에 기존방식을 적용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이후의 차량에도 신칸센 및 재래선에 모두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어요.
당장 축중 문제를 보더라도, 952계는 대차가 8개이고 차축이 16개, 따라서 축중은 7,425kg이 되어요. 그런데 953계는 대차가 6개라서 차축은 12개. 총중량은 근소하게 작긴 하지만 축중은 9,075kg로 크게 커졌어요. 대체로 축중이 궤도파괴에 직결되는 경향을 보이기에 축중은 되도록이면 작은 게 좋고, 따라서 연접차의 큰 축중은 신칸센 설비의 장기간 운용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리고 궤도의 최소곡선반경도 재래선의 400m(1급선)에 비해 2,500~4,000m로 연접차의 곡선주행성능을 살려야 할 필요도 딱히 없어요.
한국은 고속철도를 도입하면서 과연 이런 연접차의 장단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을 한 걸까요?
물론 연접차가 불필요하다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한국내에는 호남선 서대전-익산 구간이라든지, 태백선 전구간, 영동선 영주-동해 구간같은 급곡선 구간이 있으니까 그런 구간을 위한 통근형 및 특급용 여객열차로서 단편성 연접차의 투입이 필요해요. 그러나 고속철도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요.
가장 먼저 도입된 형식인 KTX-I 편성의 경우 388m, 18량+기관차 2량의 장대한 편성이면서 수송력은 935명에 불과해요.
일본의 신칸센전차의 경우 700계가 400m, 16량 편성에 1,323명, E2계가 10량 815명/8량 630명, 2층인 E1계가 302m, 12량 편성에 1,235명, E4계가 202m, 8량 편성에 817명이예요. 미니신칸센 대응차량인 E3계 6량편성이 338명의 수송력을 보이는데 이게 126m의 길이예요. 이 편성을 3중련하여 1량으로 하면 수송력은 1,014명, 길이는 378m로 더 짧으면서도 수송력은 더 높아요.
독일의 ICE 3의 경우는 8량편성이 197m이며 수송력은 441명에서 460명, 16량으로 중련운전을 할 경우에는 882명에서 920명으로 다소 적은 편이지만, 실내공간이 더욱 넓고 쾌적한 장점이 있어요.
KTX의 목적이 대규모 여객수요에의 고속대응이 아니었던가요? 그냥 고속수송이 목표고 수송력증강은 목표가 아니었나요?
이렇게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게 무비판적으로 프랑스의 기술을 수입해 오기만 하면서, 관절대차는 안전에 유리하다는 말 하나만으로 철도 이용자들을 현혹시키는 건 아닌가요? 정말 안전을 위한다면, 고속선과 재래선을 오가는 식으로 편성을 복잡하게 하지 않고 완전히 별개의 시스템으로 분리해야 맞아요.
따라서 신앙으로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관절대차 문제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다음 회차에서는 비용편익분석의 문제를 다루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