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법관들 사이에서 재산비례형 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데 과연 이게 정의로울지는 생각해 볼 것이 상당히 많아요. 그래서 이번에 좀 다루어 보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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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비례형 벌금제에 대한 찬성논리를 요약하면 이렇게 되어요.
사법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자산가에서는 형벌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어요. 얼핏 보면 그럴 듯한데 과연 정말 그럴까요?
그럼 이렇게 질문을 해 볼께요.
벌금이란 법익 침해에 대해 범법자가 부담해야 하는 가격인데, 법익 침해의 가격이 법익 그 자체가 아니고 범법자에 따라 결정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러면 무자력(無資力)인 사람은 무죄가 되어야 한다든지, 빚이 더 많아서 순자산이 마이너스인 사람은 마이너스의 벌금이 부과되는, 즉 범법에 대해 국가로부터 포상을 받는 일도 정당화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모순에 노출될 수 있어요. 그리고 지적한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재산가액에의 변동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재산비례형 벌금제는 이러한 논리의 확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만일 누군가가 징역 10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죠. 이 경우 인간의 기대여명에 따라 징역형을 달리 부과한다면?
어느 나라의 기대수명이 80년이고, 문제의 범죄를 저지른 국민 갑은 20세, 을은 65세라고 하죠. 그러면 기대여명은 갑이 60년, 을은 15년으로 갑이 을의 4배. 그러니 여명에 비례하여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정의로우니까 갑에게는 징역 40년을 부과하고 을에게는 징역 10년을 부과하게 되면 찬성할 수 있을까요? 재산비례형 벌금제에의 찬성은 이런 황당한 결론에의 동의를 강요하는 것이죠.
또한, 현행법에는 추징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범죄로 얻어진 이득에 대한 몰수.
즉 범죄의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하기도 한데 재산비례형 벌금제가 얼마나 설 자리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여러모로 논리가 허술해요. 이것이 정말 합리적이라면 채택하는 국가가 많을 것인데 독일, 오스트리아, 핀란드 정도를 제외하면 그리 많지도 않고 그마저도 소득비례형 벌금제였죠. 영국이 소득비례형 벌금제를 도입했다가 결국 그만둔 역사도 있어요.
그래서, 재산비례형 벌금제는 이상적으로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실질은 이상과 거리가 있거나 오히려 그 이상을 적극적으로 해하는, 따라서 정의롭지 못한 제도로 보여요.